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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이박힌책한권

엄마는 참 잘했어

by 허정구

대구 집에 다녀왔다. 집을 나설 때 엄마가 싸준 것들을 이곳 숙소에 와서 꺼내 본다. 어제 경산시장에서 사 온 밤 과자. 첫날 사갔던 왕만두와 군만두. 그리고 바나나우유. 그리고 빵 3개. 만두랑 같이 포장해 왔던 간장과 단무지까지... 모두 모두 비닐봉지에 따로 담아 묶어 한 곳에 넣어주었다.

늙은 어머니는 어느새 8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집에 가면 곰탕에 불고기에 꼬막무침 등 갖가지 맛난 것을 한 상 차려주신다. 본인 몸조차 가누기 힘듦에도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객지에도 배곯고 산다며 따뜻한 밥을 손수 지어 주신다. 그것이 미안하고 안쓰러워 그냥 한 끼 식사로 밖에서 떡볶이나 순두부 등을 사가서 먹지만... 엄마의 밥상에 밀려 남게 되면 고이고이 담아 싸주신다.


이곳 숙소에 와 가방에 든 봉지를 펼치며 눈물이 났다.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는 80을 넘어 구십이 가까워옴에도 손수 밥을 해 드셔야 하는 본인의 삶. 평생을 일만 하셨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일이다. 그렇게라도 자식에게 짐 되지 않으려 아프지 않으려 하고 정신 줄 놓지 않으려 하고 그렇게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엄만 참 잘하고 있는데 여전히 자식 걱정만 하신다.


집을 나선 지 네댓 시간 지나 걱정할까 봐 비행기에서 내려 서귀포 오는 버스를 타고 주차해 놓은 차에 도착하면 전화를 한다. '잘 도착했다고 걱정 말라고'

엄만 뉴스에 제주도에 눈이 많이 온다던데 하며 걱정을 했다.


엊그제는 내가 매달 보내주는 돈 안 쓰고 모아서 이 천만 원을 만들어두었다 했다. 갑자기 본인이 아프기라도 하면 그렇게 지금껏 키워준 자식새끼가 돈이 없어 힘들어할까 봐 매달 보내주는 용돈 30만 원을 모아 이천만 원이 되었다는 말에 가슴이 메어왔다.


산다는 건 참 쉽지 않다.

나 역시 애들이 있다 보니 자식새끼에 대한 부모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된다. 어떻게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 어떻게라도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을 알기에 더 서럽고 더 눈물이 난다.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라 자식새끼들은 공부한다고 하면 책 산다고 하면 주머니의 삼지 돈은 물론 단칸 셋방살이할 때 옆집에 그 옆집에 돈 만원을 어렵게 빌려서라도 책 산다는 그 돈을 마련해 주셨다. 그렇게 사셨는데 늙어서까지 이놈 저놈 둘 다 혼자 살다 보니 제 삶에 바빠 옆에서 챙겨주고 보살펴 주지 못함에도 그나마 버텨주시는 것이 고맙고 고마운데 아직도 자식이 배곯고 다닐까 봐 걱정이시다.


글을 모르는 엄마이기에 말로 못하는 이 무수한 감정을 한 번도 편지에 담아 전해주지 못했고, 여자애들처럼 살갑게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하며 무뚝뚝하게 말하며 우린 평생을 살아왔다.


「엄마는 참 잘했어.」

지금도 참 잘하고 있으니


오늘 가던 내일 가던 사는 날까지 그냥 엄마만 챙기며 살았으면 좋겠어. 나이가 들어 아픈 걸 어쩔 수 없지만 필요하면 집도 팔고, 필요하면 30년 전 아버지가 남겨준 직은 땅도 팔아서


조금 덜 아프게,

이가 성치 않아 온갖 맛난 거 다 드시지 못하더라도 드실 수 있는 드시고 싶은 맛난 거 드시면서 그냥 사는 날까지 편케 사셨으면 좋겠다. 해줄 수 있는 건 늘 이 철철 넘치는 마음뿐이지만 내게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지금처럼 그다지 아프지 않고 아프지 않으려 그렇게 애써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마는 잘해왔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말도 하기 전에 울컥 눈물이 났다.


오이야... 오이야...

늘 이래도 오이야 저래도 오이야.


늘 자식에게 해준 게 없어 미안하는 엄마처럼

자식도 늘 마찬가지네.

한 번도 엄마에게 뭘 해준 게 없네.

엄마는 늘 따뜻한 밥상을 손수 차려주셨는데 나는 늘 그 밥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했네.


엄마는 참 잘했어. 엄마는 지금도 참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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