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첫 밤낚시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한데...고속도로 길위에서서 차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네.
난.감.하.네.
왠지 오늘은 100km가 아주 멀게만 느껴지네.
갈수도 안갈수도 없는 어느 지점에서 초라한 나를 느끼네.
아들과 밤낚시를 갔었다. 한번쯤 가고 싶었다. 나만의 낚시를 같이하고 싶었다.
살아갈 앞날의 삶에서 격게될
무수한 기다림과 고요.정적.그것들과 함께하는 마음을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다. 고기를 잡는 낚시가 아닌 기다리는 낚시를 어둠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낚시를 하며 삶이란 요란한거같지만 별거아니라는걸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이였다.
다행히 기다림을 지루하게 생각하지않고 쉬엄쉬엄 밑밥을 던져 고기는 잡혀주었다.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아무것도 할수없지만 무던히 밑밥을 주면 한번쯤은 기회가 온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그렇게 고기는 찌를 올리지않았지만 물속으로 끌고들어갔었고 순간 챔질에 성공하여 그 바늘에는 고기가 걸려있었다.
기억에 남을 일들이 발생한 주말이였다. 새벽 3시와 4시경 마지막 피크 타임에 난 낚시대를 던지다 바늘이 손가락을 찔렸다. 그 바늘은 살속을 아주 조금 파고 들어가버렸는데 미늘때문에 좀처럼 빠지지않았다. 몇번인가 아픔을 참고 빼보려했는데 생살에 박힌 바늘은 쉽지않았다. 꽤나 긴시간 낚시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였고, 아플까봐 옆에서 걱정해주는 아들덕분에 아프지는 않았다. 바늘이 박힌 채 어둠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1시간 남짓 더 낚시를 하곤 정리하고 대구 집으로 출발했다.
운전과 동시에 쏟아지는 졸음에 옆에 앉은 아들은 연신 내가 조는 걸 알고 깨워주고 깨워줬다. 아주 어렵고 힘들게 가고 있는데 이번에 차에 CHECK등이 들어왔다. 차에 대해선 무지한 나는 얼마남지않은 대구까지만이라도 달려주길 바랬지만...차는 엑셀을 밟아도 속도가 올라가지않았고 마침 나온 밀양IC로 빠져나와 국도를 달려 가볼까했는데 결국 시동이 꺼지는 일이 생겨 견인차량을 불러 아직 문도 열지않은 정비업체에 도착했다.
마침 인근에 병원이 있어, 진료시간까지 1시간 넘게 남아 응급실에서 어제밤에 손가락이 박힌 바늘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았다. X-ray를 찍고, 침상에 누워 마취를 하고 바늘은 제거 되었고 ... 바늘이 박힌 이유로 파상풍주사도 맞았다. 그 순간 내옆에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그 무엇보다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정비업체에선 차량이 연료계통에 이상이 있다며 외지에서 왔고 또 가야하기에 일단 연료필터를 교체후 운행해보고 추후 이상이 있으면 연료분사펌프를 점검하라고 했다. 1시간여 부품 교체후 차는 대구에 무사히 도착했고 우리는 목욕탕에 갔다. 그리곤 둘다 잠들었다. 4시간 5시간...밤낚시는 늘 온몸에 피곤을 무거운 추처럼 드리워 천근만근 무겁게 만든다...
오후 3시경 깨어나 씻고, 어머니집에 도착해 생신저녁을 같이 먹고 잤다. 그리곤, 오늘 점심때서야 깨어나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소고기미역국을 맛나게 먹고 아들은 동대구역 기차 태워 다시 서울로 보내고 난 늘 그러했듯이 혼자 혼자인 도시인 가고 있다. 아직 85km나 남았는데...어제 새벽처럼 차량에 CHECK등이 점등되기에 우선 함양휴게소에 들러 차를 식히고 있다.
차도 많은 시간이 지나다보나 많이 아픈가 보다.
그나마 이 차라도 있으니 낚시도가고 바람도 쐬는데...갈길은 멀고...걱정이네.
아들은 서울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아들과 함께한 첫밤낚시의 추억은... 뭘까.
기다림일까.
아니면 편안함일까.
오는 길에 현풍휴게소에 담배를 사러 들렀다. 우연히 "소원을 들어주는 느티나무 만나러 가는길"이란 안내문을 봤다.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나보더라.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고 난 500년 느티나무에게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고 왔다. 그렇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긴세월 살아온 나무신에게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그말을 믿고 빌었다.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그것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