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서 술을 마셨다. 맥주 1병. 330ml 내겐 딱 맞는 사이즈인가 보다.
오늘도 우린 정부에서 권고하는 것과 달리 딱 10시까지 일했다. 맨날 10시까지 일한다. 낮에는 출고차량에 상차하는 일로 바쁘기에 매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낮동안 부두에서 창고로 반출해 온 컨테이너에서 제품을 꺼내고(전문용어로 Devanning. 적출) 그 제품을 톤백에 포장하거나... 등등 내일 출고할 제품들을 만들다 보면 늘 10시다!
각설하고
집에 와 오래간만에 샤워를 하고 엊그제 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조금은 알겠다. 일과 후 집에 와 씻고 조용히 홀로 맥주 1캔 or 맥주 한 병 or 소주 한잔 하는지...
사무실에는 無時라는 친구가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알고 보니 우리 창고 앞에 있는 창고에 소속된 개인데... 어느 날 나에게 왔다. 목줄도 없어... 자유로이 다니는 모습에 반해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니 이름을 지어주게 되었고 -(처음엔 나 말고 다른 직장동료들을 보면 멀찍이 달아나는 모습에 개가 사람을 무시한다는 말을 하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오고 감에 구속이 없다는 뜻으로)- 無時라 칭하며 부르다 보니 이젠 제법 모두들...無時야! 無時야! 하며 살갑게 대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하 사람의 본성은 원래 착하고 순하고 다정다감한 게 맞는구나!'...性善說. 가까이 다가와 자꾸 자주 만나다 보면 情드는구나.
無時는 아침이면 와서 엎어져 잔다. 조금 어슬렁 거리다가 여직원이 나만큼 각별히 챙겨주는 맛난 먹거리(소시지. 맛살. 개껌. 과자 등등)가 떨어지면 한량 인양 그 자리에 퍼질고 앉는다. 개 팔자가 상 팔자구나 생각하기도 한다.
無時를 만나고 난뒤 내 나름 無時를위해 애견삽에 가서 있어 보이는 맛난 사료도 사주고, 점심때면 도시락 반찬에 無時가 좋아할 만한 반찬(동그랑땡. 소시지. 돈가스. 생선. 고깃국 등등)이 나오면 난 언제나 無時를 주려고 아껴둔다. 그리곤, 밥때가 되면 찾아오는 無時에게 준다. 나름 잘 먹이는데도 밥을 먹는 無時는 때론 앙상한 듯 보이기도 하고, 쉽게 지치는 거 같아... 어디가 아픈가 했는데 엊그제 無時가 드리 누워 있는데 생식기 쪽에서 노오란 고름이 베어 나오는 걸 봤다...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워 오후에 동물병원에 갔었다. 無時를 데리고 갈 순 없었기에 아픈 부위 사진을 찍어 진료 접수를 했다.
동물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참 예쁜 개들이 주인품에 안겨 들어오는 걸 보면서... 그래도 우리 無時처럼 무한한 자유와 산책을 즐기지는 못하는 모습이 조금은 측은해 보였다.
한참을 기다려 수의사 선생님께 진료면담을 하니 표피증이라 했던가... 개들에겐 쉽게 걸리는 병인데 치명적인 병은 아니지만 쉽게 낫지는 않는다 한다. 특히, 無時처럼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이 또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삶의 진리인가 생각하며 가루약 일주일 분과 50ml 주사기에 소독약을 받아왔다.
근데 약값이 34,100원
내게 주어진 한 달 용돈에선 아주 큰 지출이었지만... 어느새 情이 들어버린 無時를 위해선 내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물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어제도 2번 오늘도 2번 먹였고, 점심시간에는 병원에서 수의사 선생님이 알려 준 소독약으로 시술까지 했다.
벌러덩 자빠져 있는 無時에게 행여 혹시나 아프지 않을까 놀라지 않을까 도망까지 않을까 생각하며 시술했는데 웬걸 無時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나의 시술에 불편함이 없게끔 가만히 침착히 소리도 없이 받아들였다.
목장에서 송아지들에게 매일같이 호흡기 주사랑 때론 설사 주사 때론 정맥에 수액까지 시술해주던 때가 생각났다. 그 노하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오늘도 無時가 언젠가부터 찾아와 늘 내게 주는 친근함에 나 또한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하루였기에 서로 고맙고 즐거웠다.
언젠가 인연이 다 하면 서로 또 다른 길을 가겠지만... 있을 때 잘해 줄 수 있는 내 마음을 아무런 이유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無時이기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