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이박힌책한권

아들이 보내준 추석선물

by 허정구

올 추석에는 만나지 못했다.

다들 자제하는 뜻에 따라 객지이자 생활터인 이곳 제주 서귀포 숙소에 머물며 하늘만 봤었다!
어느덧 훌쩍 커버린 아들은 고향 대구 할머니 집에서 명절맞이 다 같이 만나면 주려고 선물을 준비했었나 보다. 그 추석 선물이 오늘 우편택배로 도착했다.

추석 전 안부 겸 이번엔 못 보더라도 다음에 보자 할 때 알바를 해서 모운 용돈으로 "할머니께 드릴 홍삼 하나 샀다"는 말에 '어느덧 다들 잘 컸구나'생각하며 고맙고 흐뭇하고 미안했는데...
어떻게 잘못 살다 보니 철들 무렵부터 애들은 엄마랑 살고 난 떠돌듯 외지 생활을 하며 결국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다.
아무튼... 그런 아들이 보내준 홍삼 선물을 받은 나는 부모로서 참 많이 부족한 아버지인걸 알기에 고마움만큼 미안함이, 흐뭇함 보다 미안함이 더 컸다. 딱 필요한 만큼만 월급으로 준다는 직장생활을 하며 월급날이면 용돈이라고 매달 얼마씩 애들에게 보내주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기에...
이런 선물을 챙겨줄 줄 아는 아들로 잘 커준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넘치는 선물이고... 나 또한 아들 나이 때 이런 마음이었던 생각에 고맙다는 톡 메시지를 보내며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약속을 제안했다.
이제 갓 22살의 아들에게...
내가 추석명절이라고 용돈을 더 주지도 못하는 처지에 이런 선물을 받을 염치는 없다. 더불어 아직 한 번도 선물 받아본 적 없는 인생 첫 홍삼이지만...
아직까지는 명절에 이런 선물을 받을 나이는 아닌듯한 생각이었나 보다.

앞으로 11년 동안은 아빠에게 선물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그 마음만으로 충분하니... 11년 동안은 Keep 해두기로 하고, 딱 11년 뒤에 오늘 선물을 해주면 어떨까 제안했다. 『2031년 10월 06일』
그리곤 갤린더 어플에 11년 뒤 오늘을 찾아보니... 그때도 추석은 올해처럼 10월 01일이었다.



순간 나는...
문득 그때까지 살 날을 기대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1년 이후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
누군가의 주문에 걸린 듯 하루하루를 맞이하며 무던히 주어진 삶이기에 그저 열심히 그 하루를 살아갈 뿐...'1년 뒤에 내가 뭘 해야지'란 생각은 최근에 해 본 적이 없는데...

문득 오늘 아들이 보내준 선물 때문에 난 11년 뒤 오늘을 꿈꾸게 되었다. 결국 오늘 아들이 내게 보내준 건 홍삼 추석선물이 아닌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기대. 그것도 11년이란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아들에게 받을 선물을 꿈꾸게 해 주었다.

때론 외롭다.
많이 힘들다.
혼자 떠돌듯 객지 생활을 하며 보냈다.

서울. 마지막 집을 떠난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네.
그동안 늘 그랬다.
내일을 맞이 할 기대감으로 설레임을 꿈꾸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차리리 오늘뿐이었으면,
내일이 오지 않아도 후회는 없다는 생각으로 잠들고 또 아침이면 깨어난 나는 하루살이를 시작하곤 했었다.

노후를 설계하는 친구가 부러웠다.
먼 미래를 위해 쉰다섯까지는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고, 쉰다섯 그 후엔 바닷가에서 살겠다며 꿈꾸는 친구의 알찬 노년 계획이 내겐 꿈조차 꿀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빠듯하게 빳빳하게 살아가며 늘 미련도 후회도 없이 주어진 오늘 하루를 부끄럽지 않게 살다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만 품고 있었다.

근데 그런
나에게 불쑥 떠올려진 11년 뒤 아들과의 선물 약속은
「아주 특별하다!」


너의 따뜻한 마음 충분히 아니까
아빠에게 선물은 이젠 한참 동안 Keep 해뒀다가

음....

지금부터 11년 뒤에나 해주는 걸로 하자!
11년 뒤 오늘
2031년 10월 06일에

그때까지 꼭 자리 잡아라!

아빠도 너처럼 그렇게 자라왔으니
네 맘 다 알아...

그래서 더 미안해 더 많이 고맙고^^

그렇게 하자꾸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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