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름이박힌책한권
37번 훈련병 허○○에게(위문편자 03)
아들 할 만하니?
꼭 일주일 만에 비와 바람이 그쳤다. 월요일부터 시작되었던 바람과 비를 가득 품은 태풍은 어젯밤과 오늘 아침 사이 여기 서귀포 앞바다를 지나가며 아주 길었던 태풍은 잔잔한 바람으로 사라졌다 하더라
우리 아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갔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명언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고 선대의 고참들이 이야기했나 봐.
오랜만에 아주 맑은 파란 하늘이 보였고, 하얀 구름이 가을임을 새삼 실감 나게 해 주었고 지금 밤엔 또 별과 달과 구름이 여긴 제주도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네.
슬슬 이제는 조금 힘겨운 육체훈련도 할 만 한데... 느닷없이 주말과 추석 연휴가 내리 5일 연속적으로 이어져... 추석 끝나면 벌써 말년이네.
아빤 어제 밤새 비와 바람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내일 대구에 갔다가 모레쯤 다시 오려고... 오늘은 이곳에 남았어. 훈련소 훈련병에게도 면회가 가능하다면 한번 찾아가 우리 아들의 늠름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아무리 군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훈련소 훈련기간 중에는 면회는 안될 거야... 그래서 겸사겸사 세 번째 위문편지를 또 쓰고 있어.
우리 아들을 위문하는 건지 , 아빠인 나 자신을 위문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아무튼 열심히 하렴. 매 순간 하나하나 두 번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고 시간이니 열심히 하렴. 그러면 오히려 또 힘들고 불편한 게 재미있을지도 몰라. 아빤 군대 가서 아주 오랜 생활 뒤에(상병 말호 봉인가 병장 되어서) 태권도 1단 단증을 땄기에 우리 꼬맹이들에겐 나중에 군대 가면 좀 편하라고 태권도 학원에 보냈었는데 어떠니? 겁나게 많이 도움이 되지 않니? 태권도 3단 몇 명 없을 건데... 4단이었으면 그냥 완전 풀리는 군번인데 3단까지만 하고 멈추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강요할 건 아니었으니...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 잘하면 완전 이등병 때도 모든 것에서 열외 되고, 중대에서도 귀염 받는데... 아빤 달리기만 잘했지. 소위 개 발이었거든... 그래서 매일. 매주 축구할 때면 뛰어다니기만 했었지. 축구에 참여는 했지만 공은 오전 내 한 번도 차보지 못했을 때가 태반이었고, 군대에서 첫 골도 병장 달고 한참 뒤에 골대 앞에서 쉬고 있는데 공이 와서 첫 골을 기록했었던 거 같아. 근데 우리 아들은 태권도도 3단에 축구도 겁나게 잘하는데... 아빠 때 너 정도 실력이면 그냥 왔다야... 축구와 태권도를 잘하니 족구 할 땐 완전 앞에서 최전방 공격수만 했을 거야... 소위 스트라이커. 중대의 핵심. 주축. 멤바 No.1
그래서 아주 어릴 때 너희들이 태권도 학원 다니고, 슛돌이 축구 배우러 다닐 때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뿌듯했었지.
오늘 하루도 잘 마무리하고,
아마도 이렇게 카페에 위문편지를 쓰면 출력을 해서 전달되는 듯한데 그게 몇일만에 전달되는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늘 자랑스러운 우리 멋진 아들
훈련소 기간 동안 훈련 알뜰히 받고, 어릴 때부터 수시로 어지럽다는 말 했었는데 듣고도 그냥 흘려들어서 미안...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사랑해 아들! 고마워~
아빠가 보냄.
From  허정구(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