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상대주의

개구리

by 허중매

우물 안 개구리.
개구리는 모른다. 우물 밖의 세상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우물 안이 전부.

개구리는 그렇다 치고,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은
그들의 노력으로 우물밖의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외국인. 나는 한국에서 외국인을 마주한 경험이 있다.
낯설었고, 다가가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풍기는 냄새도 다르다.
‘선입견’

27살, 처음으로 해외로 나갔다.
그곳은 토론토. 워킹홀리데이였다.
토론토는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피부의 색깔, 나이 따윈 서로가 마주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후, 한국으로 다시 귀국했다.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 시야가 넓어질 것이라고.
이게 무슨 말이었을까.
워킹홀리데이 이전에는 더 다양한 직업군을 선택할 수 있게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지금은, 직업에 한정 된 것이 아닌 ‘문화의 다양성’
즉,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포용적인 사람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타인에게 친절하고 젠틀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모두에게 친절한 이들을 마주한다.
상사, 동료, 후배, 거래처, 가족.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그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삶 테두리 안에서의 친절.

테두리 밖의 세상까지 그의 친절이 미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친절이 존재하려면
타인을 전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즉, 자기와 정반대의 철학을 지닌 타인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은 쉽지 않다.
본인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마주해야만 한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뭘까?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낯선 장소에 나를 강제로 옮겨놓음으로써
내 나라의 문화와, 나라는 인간을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마주하는 것.

시야가 넓어졌다.
삶을 태하는 태도가 한결 유연해졌다.
한국에 존재하는 외국인들을 사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다.

우물밖으로 나오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엔 즐거움만이 존재하진 않는다.
나와, 내가 살아온 나라를 성찰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나는 지금 이 글을 대만 타이난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적고 있다.
토스트와 커피. 옆에선 대만 노인분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출근하는 이,
아침 체조하는 이,
멍때리는 이,
아직 잠을 자는 이.

마음을 열고 그들의 문화에 다가가면,
보이기 시작한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구나.. 내가 너무 오만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들은, 느리면 도태된다.
‘빨리빨리 문화’
이건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한정 생존방식’

이런말이 있다.
‘단순히 관광을 하러 해외여행을 가는 건 돈과 시간 낭비이다.’

‘개소리’


우리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
우물밖으로 향하는 문을.

그 이유는 하나.
‘문화상대주의’

자문화에 심취한 이,
그에게 있어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다.
그 결과는, 비참하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역사를 바로잡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문화상대주의’
현대인이 가져야 할 기본 덕목이다.



글로 담지 못한 현장의 생동감은 유튜브에 남겨놨습니다.


https://www.youtube.com/@heojungm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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