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이름 앞에서, 조용히 나를 껴안는 연습.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오늘은 회복탄력성이 절실했던 하루였다.
감정은 계속해서 무너졌고, 나는 다시 그것을 붙잡아 세워야만 했다.
아침, 거울 속 내 눈에는 이미 불안이 서려 있었다.
불안은 때로 우리를 미리 지치게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몸과 마음이 이미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잠시 멈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오늘도 견딜 수 있어. 이전에도 그랬듯이.'
나 자신에게 작은 용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큰 좋은 일이 오기 전엔, 바닥까지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던데..‘
누군가의 SNS에서 본 이 문장이 오늘따라 유독 절실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회복탄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려움을 겪고 다시 일어서는 능력.
하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부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때로는 바닥에 무너진 채로 한참을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윗사람과의 소통은 완전히 끊긴 느낌이었다.
내가 써왔던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말로 풀어보려 했겠지만,
오늘은 그런 시도조차 공허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 신뢰, 소통의 방식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내 의견은 계속해서 무시되었고, 준비한 자료는 눈길조차 받지 못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
회의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의 냉랭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버렸다.
내가 하는 말이 의미 있게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명확하게 느껴졌던 내 생각이, 그의 앞에서는 흐릿해지고 불확실해졌다.
마치 넓은 초원에서, 천적과 단둘이 마주 선 동물처럼.
그 순간의 취약함이란.
모든 방어막이 벗겨지고,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서 있는 느낌.
도망치고 싶은데 발은 땅에 붙어있고, 숨고 싶은데 숨을 곳 하나 없는 광활한 초원 위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권력관계 앞에서 내 존재는 얼마나 작아지는지.
마치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선생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하던, 틀릴까 봐 두려워하던 그 시절처럼.
나이를 먹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슬펐다.
윗사람에게 깨지고,
후배들 앞에선 부끄러웠고,
나는 그 사이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후배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을 때는 뺨이 화끈거렸다.
존경했던 선배의 모습이 아닌, 무능력한 한 사람의 모습으로 비칠까 봐 두려웠다.
강해 보이고 싶었는데, 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 순간, 정말로 공간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투명해져서 아무도 나를 볼 수 없게 되기를,
혹은 갑자기 긴급 전화라도 와서 회의실을 빠져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자리에, 그 불편한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야 했다.
내가 부족했던 걸까.
내 방식이 잘못된 걸까.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쳤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스스로를 질책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가 되어있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분명 괴롭힘이라고 느낄 텐데,
왜 나는 스스로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그 깨달음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향한 연민이 피어났다.
최선을 다했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에게 작은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문득 휴대폰을 보았다.
2025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였다.
갑자기 내 개인적인 고통이 작게 느껴졌다.
11년 전 오늘,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에 잠겼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텐데.
내 하루의 좌절과 실패가 갑자기 다른 관점에서 보였다.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고, 내일도 일어날 것이고,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바다에 잠긴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
잊지 말아야 하는 날인데,
오늘의 나 하나 달래기에 급급해서
그 무게를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다.
나의 작은 좌절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던가.
세상에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비하면 내 오늘의 고통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그게 또 미안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라도
마음속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나 자신에게도 작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내 감정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하기보다는, 오늘 하루 동안 내가 느낀 모든 감정에도 의미가 있음을 인정했다.
세상의 큰 아픔이 있다고 해서 내 개인의 아픔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 무게를 견디며.
오늘 나는 내 무게를 견디는 법을 조금 더 배웠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무게를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도.
오늘은 나에게도, 잊지 못할 하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