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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Mar 28. 2016

그 사람을 미워한다는 건,

여전히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진짜 미워 죽겠어!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소란스러운 말싸움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참고 참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방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그래, 결국은 또 사소한 문제로 인한 싸움이었다. 참기름을 싫어하는 아빠의 입맛을 무시한 채 엄마는 시금치 나물에 참기름을 넣은 것이었다.



  "내가 뻔히 참기름 싫어하는 거 알면서 또 참기름 넣은거 봐라."

  "아니 무슨 당신만 밥 먹냐고! 당신 빼고 참기름 다 먹는데 어떻게 한 사람한테 맞추는데?"

  "밤새 힘들게 야근하고 온 사람한테 밥 한 끼 제대로 못해주냐?"

  "나 참 어이가 없어서.. 30년을 하루도 안빠지고 아침밥 차려준 부인한테 말을 그렇게 밖에 못하냐?"


똑같은 레퍼토리다. 그래도 아빠는 툴툴대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우셨고 엄마는 밥상을 치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미운짓만 골라서 한다니깐, 꼴뵈기도 싫고 진짜 미워 죽겠다! 내가 왜 저 인간이랑 결혼을 해가지고.."

그렇게 말하면서 엄마는 아빠에게 줄 과일을 깎았으며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의 작업복을 손으로 털털털며 세탁기에 넣었다.


칫, 진짜 미워하지도 않을거면서..



만약 진짜 미워한다면,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전화를 하는 남자를 보았다. 연인과 다툼이 있었는지 난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차갑다는 것을 눈치챘다.


"알았어, 그만해. 나중에 이야기 하자"


남자는 수화기를 끊고 긴 한숨을 쉬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어휴, 밉다미워"를 연신 내뱉으며 내 앞을 스쳐지나갔다. 문득 오늘 아침의 일들이 생각났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면 어떨까? 매일 저주를 퍼부으며 심한 욕설을 퍼붓고 그 상대방을 만나도 사람취급도 안하고 아예 근처에도 가지 않겠지. 그게 진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거겠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미워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건 항상 나의 가까이에 있던 누군가가 날 아프게 했을 때일 것이다.

   어렸을 적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주지 않았던 부모님이 미웠고,

   싸우면 부모님한테 달려가서 이르는 동생이 얄미웠고,

   돈 빌려가놓고 갚지 않는 친구가 밉고,

   나에게 산더미 일을 주는 직장 상사들이 밉고,

   결혼하고 나서 180도 변해버린 부인과 남편이 밉고,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떠나간 사랑했던 그 사람이 미울 것이다.


우린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미워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통쾌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처음 젓가락질을 하는 아이들이 온 식탁에 밥을 흘리듯이, 대학을 막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난생 처음 맡은 프로젝트에 밤을 새 듯, 우린 한 번도 그 사람을 미워할 줄 몰랐기 때문에 미워하기 위해 스스로 서툰 마음과 행동을 앞세울 것이다. 목표는 단 하나, 그냥 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남는 건, 그 때의 안 좋은 기억들과 모습들 뿐.

정작 그 사람은 내가 자기를 미워하고 있는 줄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 사람을 미워하기엔, 미워한 그 순간보다 행복했던, 좋아했던 순간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결국 난, 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미워한 적이 있나요?

물론 정말 미워해야 할 사람들은 악착같이 미워해야겠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 상상 속에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해버리고, 미워서 정강이를 뻥 차버리다가도 어느 순간, 그 사람과 함께한 일들을 생각하며 웃음 짓고 있는 나를, 밥은 먹었는 지, 아프진 않은 지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답니다. 그냥 미워하지 않는 게 속 편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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