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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May 29. 2016

속마음을 언급하는 일

한 번쯤은 드러내도 괜찮을텐데,

넌 씩씩해서 좋아



 "요새 잘 지내고 있어?"

 "응, 괜찮아."

 "림이 넌 항상 괜찮다고 하노! 그래도 힘든 일 있음 언제든 연락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못보는 친구와의 통화는 늘 이런식이다. 일상의 작은 일들을 나누기엔 서로가 바쁘고 피곤하다. 그리고 친구의 마지막말은 항상 정해져 있다.


 "힘든 일 있음 언제든 연락해."


 친구는 알고서 늘 저렇게 말한다. 내가 힘든일이 있어도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을 거라는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중 영원이모와 통화하는 완


 "이모, 나 아직 연하가 그리워요."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주인공 완(고현정)이는 엄마의 친구 영원이모(박원숙)와의 전화통화에서 헤어진 연인 연하(조인성)를 언급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내비친다. 난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상처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주인공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조금의 부러움을 느꼈다.


 나를 오래 봐오지 않았던 주변인들이 나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 중에는 가장 거짓된 것이 하나 있다.


 "넌 항상 씩씩해서 좋아. 매일이 즐거워보여."


 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외로워진다. 난 솔직히 씩씩하지가 않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나의 속마음을 숨기는 아니덮는 것일 뿐, 나의 마음 속은 언제라도 찢어질 수있는 얇디 얇은 천조각들도 이루어져 있다.


웃기고 있네


 몇년 전 쯤, 친한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난, 꽤나 좋아했던 사람과 이별을 한지 몇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도 힘들어?"

 친구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나에게 말했다.

 "아니, 이제 아무렇지 않은데? 요새 잠도 잘잔다. 나도 빨리 소개팅해야지."

 하며 웃어넘겼고, 뒤이어 이어진 친한 그녀의 말은 불편하면서도 꽤나 시원했다.


 "웃기고 있네. 여기저기서 소개팅 해준다해도 안하면서, 내가 너 하루 이틀보냐?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은 다 부서졌잖아. 힘들면 힘들다고 해라. 누가 너한테 뭐라고 안 해."


 전적으로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난 "아니다. 괜찮다."라는 말로 부정아닌 부정을 했다.

 난 이상하게 힘들면 힘들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을 하는 게 왜 쉽지 않을까. 일종의 자존심같은 것일까, 아님 빨리 이겨내기 위한 최면을 스스로에게 거는 것일까.


 한 번쯤은 내 속마음을 드러내도 괜찮을텐데 말이다. 아무도 내 상처에 대해 뭐라 할 사람이 없는데 말이다.



 난 아직도 힘든 일이 있으면,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한다. 이유를 굳이 따진다면 이게 아마 맞을 것이다.

사람들이 정의한 내가 항상 씩씩하고 강한 사람이라면 그냥 그렇게 보이도록 사는 게 편할 수 있으니까.


애써 약한 나의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아도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으니까.


 물론, 날 오래봐 온 사람들은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며 나무라겠지만^^




주변 지인들의 고민은 잘 들어주면서 정작 내 고민과 내 속마음을 언급하는 일은 왜 이렇게 힘들까요?힘들고 상처받는 것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것처럼 어찌보면 삶의 당연한 조각들인데 애써 혼자서 이겨내려하는 저는 아직 세상을 서툴게 살아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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