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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일 Sep 28. 2019

풍경화

영원히 변치 않을 너와 나


생각을 멈추

잠시 기대어 본 것은

너의 품은 무척이나 드넓었기에

그렇게, 네 기대어

문득 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너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향하고 있는 그 시선에 맞춰

나도 고개를 돌려보니

너의 눈이 향하는 곳은

중간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놓인

드넓게 펼쳐진 풍경이었다.

부족함 없는 품만큼이나

네가 바라보는 세상도 똑같다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갑자기, 네가 입을 열었다.


"지금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우두커니 서있는 저 나무도

우리가 앉아있는 이 들판도

 모습들은 사시사철 바뀌겠지만

우리만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영원히 변치 않을 너와 나'


뭐, 그런 말을

내게 해주고 싶었던 걸까.

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너의 모습은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나도 모르게 너의 그 모습이

자꾸만 맘에 걸렸는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풍경화라는 것을 그려보았다.


그때 그 순간에만 존재했던

하늘 위 구름과

우두커니 서있는 나무 한그루,

드넓게 펼쳐진 들판 위에

기대앉은 우리의 뒷모습까지.

그렇게 풍경화를 완성시키고

한편에 제목도 같이 달았다.


'영원히 변치 않을 너와 나'


얼마 후,

너의 생일날에

내가 그린 풍경화를 선물해주었다.

선물 받은 풍경화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던 너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웃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헷갈리는

그런 옅은 미소였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온 너의 생일날.

서로 바쁜 탓에

풍경화를 선물해줬던 생일 이후로

오랜만에 들른 너의 집이다.

생각이 난 김에

내가 그려준 풍경화를 구경하러

너의 방을 들어선다.


방문을 들어서자마자

처음 맡아보는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코끝을 간지럽히는데

오랫동안 써온 향수가 질려서

새로 바꿨나 보다 생각하고 만다.

스치는 생각을 뒤로하고

풍경화에 눈을 돌렸는데

어딘지 모르게 색이 바랜 느낌이 난다.

갸우뚱하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하늘, 구름, 나무, 들판, 나의 뒷모습..

모두 온전히 색을 품고 있는 가운데

너의 뒷모습만이

색을 잃고 옅게 바래져있다.

한편에 달아놓았던

제목 일부분도 같이 말이다.


'영원히 변치 않을 너와 나'


풍경화 속 옅어진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때의 네 모습을 돌이켜보는데

그때 중얼거렸던 그 말은

내게 해줬던 말이 아니라

너의 혼잣말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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