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생활에서 경험한 운과 임계점

15. 26살의 치열했던 인턴 기록 - 03

by 홍홍

이번 글은 이전 글의 연장선입니다. 먼저, 상황 이해를 위해 앞 글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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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술을 진탕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말하면서 "나 아마 안될 것 같아"라고 말씀드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분명 부모님도 속상하셨을 거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발표 자료 좀 한 번 보겠다고, 넌 취했으니깐 씻고 들어가 자라"고 하셨다. 그렇게 그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무언가 할 말이 있으셨는지 나를 거실로 부르셨다. 몇 가지만 알려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빠 말까지 지금 들을 시간 없어! 빨리 고칠 거 고치고 발표 준비해야 돼!!"라고 하면서 짜증 섞인 말을 했다. 그때는 내 스스로가 너무 초조해서, 아버지의 조언도 들을 시간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다 고치라는 거 아니니깐 한 번 와서 들어봐"라고 말씀하셨고, 결국 난 마지못해 거실로 나갔다.


이 순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내가 인턴 생활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행운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누나가 있는 자리에서 차분히 하나씩 말씀하셨다. "슬라이드마다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결론이 뭐야?", "문장이 너무 길다" 정말 소름 돋게 전날 팀장님이 이야기한 거랑 똑같았다. 아버지도 팀장도 하셨던 분이기에 수많은 보고와 PPT를 보셨던 분이다. 나의 발표자료를 보는 어른들의 관점을 다 똑같나 보다. 그러면 결국 내 잘못이기에, 어른들 시각에 맞춰 한번만 더 고쳐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때 결국 아버지가 한 번 보지 않으셨다면 난 아마 그냥 그대로 발표했고, 결과는 안 좋게 나왔을지 모른다.


결국, 한 번만 더 했다. 그렇게 토요일 하루는, PPT를 수정하는데 하루를 보냈다. 이왕이면 결과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오픈소스를 활용해서 만든 내 결과물도 영상으로 찍어 PPT에 첨부했다. 그렇게 새벽 두시쯤 되었을까, 전날, 그리고 아침에 지적받았던 부분이 또 다 고쳐졌다. 역시 머릿속에 있는 걱정은 크지만, 막상 행동하면 걱정이 작아진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리고 다음날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발표 준비를 했다. 개인과제, 그룹과제 모두 발표 20분, 질의응답 10분이었다. 두 과제 모두 스크립트를 짰고 스크립트를 계속 보면서 달달 외웠다. 그리고 PPT 슬라이드를 넘기면서 발표 내용을 계속 시뮬레이션을 했다. 시간을 재 가면서, 어떤 포인트에 어떤 말을 할지를 계속 수정하였고, 이왕이면 재스쳐까지 신경 쓰면서 연습했다. 얼마나 연습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계속했다.


8월 14일 아침, 대망의 발표날이 다가왔다. 발표는 3명 중 내가 마지막이었고, 오후 4시에 발표를 했다. 우리 세명 모두 엄청 긴장했고, 나 역시 한두 시간 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살면서 그렇게 떨렸던 순간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인턴 면접 때가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지금이 훨씬 더 떨렸다. 친구들 모두 우리 끝나고 서로 고생했다는 말을 꼭 하자고 이야기했다. 서로가 누구보다 고생한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만큼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닌 격려와 응원이었다. 앞서 발표한 친구들 모두 발표를 끝마치고 나왔을 때, 약간의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얼굴에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드디어 마지막, 내가 발표하러 들어갔다. 비록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졌어도, 하도 전날에 스크립트 달달 외워서 그런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나왔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어떤 분이, "회사 생활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웠나요?"라고 물어봤는데, 내가 "퇴근하려 했는데 갑자기 팀장님이랑 과장님들과 번개모임을 하셔서 술 마실 때가 제일 재밌었습니다"라고 했다. 그걸 듣고 거기 계신 분들이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다 끝마치고 팀원 분들도 고생했다는 말은 계속해주셨고, 팀원 분들과 마지막 회식을 한 후, 나의 소중했던 인턴 생활도 끝이 났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4학년 2학기, 9월 6일 오후 3시, '기술경영' 과목의 첫 수업에서 나는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 모든 게 우리 가족이 자료를 보셨기 때문에 가능했고, 팀장님과 아버지가 우연히 같은 말을 했기에 가능했고,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한 번만 더' 했기에 가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연히 떨어졌을 것이다. 그 순간 운을 얻고, 임계점을 넘게 해 준 나와 부모님, 팀장님 등 모든 순간에 감사하단 말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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