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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Sep 26. 2021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짊어질 삶의 무게

02. 준비

 배낭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내 삶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배낭을 쌀 때 항상 나오는 말이다. 삶의 무게를 줄이는 것. 한 달 동안 걷는 길이기에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한다. 하지만 또 10kg이 넘어버렸다. 인터넷이나 책에서는 자기 체중의 1/10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는데... 7~8kg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줄여도 줄여도 저 정도가 안되었다. 짐 싸 보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별거 안 넣었는데도 무게가 나간다... (간혹 가다 5kg까지 줄였다는 분도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한 거지??ㅎㅎ)


 결국 12.9kg까지 나왔다. "내 삶의 무게가 13kg이니깐 내가 감당하고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세면도구도 다 새거니 쓰다 보면 무게가 줄어들 터였다. 3년 전 다이어리를 뒤지다 보니 저런 유물도 나왔다. 저렇게 썼는지 기억이 안 났는데 오랜만에 보니깐 신기했다. 첫 파리 여행부터 순례길 끝나고 스페인 남부를 도는 것까지 일정을 저렇게 짰었구나. 감회가 새록새록하다ㅎㅎ 

순례길을 걷기 전,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엇던 나의 계획


 그렇게 모든 일을 제쳐두고 순례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기까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준비하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우리 세상도 그러지 않을까? 중요한 길목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기까진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혼자 있을 때, 고민을 하면서도 누군가 함께 있을 때는 또 금방 잊어버리는 것. 그렇게 마음 한 켠에 선택을 남겨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결심한 순간, 행동이 생각을 앞지르게 된다. 주변에서는 충분히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하지만, 오히려 현실에서는 행동을 먼저 하면 걱정할 틈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기에 일단 행동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순례길을 걷는데 필요한 필수 준비물은 대략

배낭, 등산화(트래킹화), 침낭, 우비, 슬리퍼, 세면도구, 선크림 2개, 빨래집게, 손톱깎이, 선글라스, 의류(위아래 각각 2벌), 등산용 양말, 바람막이 (또는 경량 패딩), 상비약, 등산스틱, 세제, 목 부분도 가릴 수 있는 모자, 속옷, 귀마개, 배드버그 약, 스포츠 타월, 멀티탭, 배낭 커버, 도난 방지용 자물쇠, 시계, 옷핀, 보조배터리, 랜턴, 숟가락, 젓가락, 손수건, 읽을만한 책 등이다. (인터넷에 관련 자료가 많으니 더 찾아보시면 됩니다.)


순레길 떠나기 전 내가 준비했던 준비물

 이 중 별거 아닐 거 같지만 순례길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목까지 다 가리는 모자

 매우 햇빛이 쌔다. 밀짚모자 안된다. 목이랑 볼까지 다 가릴 수 있는 모자여야 한다. 도저히 못 구하면 주변을 손수건을 둘러서라도 다 가려야 한다.(대부분 그렇게 다닌다.)


2. 랜턴

 랜턴은 무조건 필수이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보통 9~10시면 불이 꺼지고 순례자들이 새벽 5시 정도엔 일어나서 나가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이다. 이때 휴대용 랜턴으로 짐을 정리한다. 특히 공립 알베르게는 대부분 1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불을 킬 수가 없다. 작은 랜턴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3. 빨래집게

 순례자들은 매일 걷고 나서 빨래를 한다. 빨래집게는 많을수록 좋다. 다행인 것은 많은 순례자들이 삶의 무게를 버리기 위해 빨래집게를 놓고 간다. 그런 빨래집게 몇 개 쓰면 된다. 건조하고 햇볕이 강해서 보통 그날 빨래하면 그날 마른다.


4. 옷핀

 늦게 숙소에 도착해 빨래를 하거나 비가 오면 옷이 다 안 마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대부분 순레자들이 걸으면서 속옷, 양말 등을 말린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옷핀이다. 양말과 속옷을 옷핀에 끼워서 가방 뒤에 달고 다니면 된다. 그러면 한두 시간 있다가 마른다. 대다수의 순례자들이 그렇게 걷고 있고, 나 역시도 거의 매일 가방 뒤에 옷을 말리고 다녔다.


5. 귀마개

 100명이 넘는 공립 알베르게에 어떤 복병이 있을지 모른다. 코 고는 소리가 크면 잘 못 잔다. 귀마개는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여러 개를 준비하자.


6. 경량 패딩(또는 바람막이) 그리고 경량 침낭

 스페인 북부는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춥다. 나의 경우엔 5월에 눈이 내린 적도 있었고, 아침에 걸을 때 영하로 떨어진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알베르게에는 이불이 따로 없어 침낭 안에 들어가서 자야 한다. 두꺼우면 배낭 무게가 많이 나가니 경량으로 꼭 준비하자. 


7. 우비

 우비는 이왕이면 좋은 거 샀으면 한다. 같이 다닌 분들 중에 비닐로 된 우비를 가져왔는데 약해서 대부분 찢어졌다. 유럽에 있는 스포츠 샵에 값싸고 질 좋은 우비가 많으니 이왕이면 안 찢어지는 걸로 하나 사자!


8. 멀티탭

 멀티탭 하나 있으면 최소 3명 이상이 편하게 쓸 수 있다. 굳이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좀 같이 써도 되냐고 막 물어본다ㅎㅎ. "다른 사람이 빌려주겠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 정도는 챙기면 좋다.

 

9. 등산 스틱

 등산 스틱은 두 개의 발이라 생각하면 된다. 내 두 발이 힘들 때 등산스틱이 배낭과 몸의 무게를 분산시켜준다.  쓰는 법을 확실히 알면 그 위대함을 알게 된다. 다만 등산스틱은 비행기에 갖고 탈 수 있는지는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저가항공은 안 되는 경우도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유럽에서 다 살 수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10. 커피 스틱

 커피 스틱 몇 개 챙겨가면 사람들이 정말 좋아한다. 순례길에선 거의 레어템 수준이다. 20개인가 챙겨갔는데 같이 걸었던 사람들이랑 며칠 만에 다 먹었다ㅋㅋㅋㅋ 그래도 챙겨가면 이쁨 받을 수 있으니 한 번 챙겨가는 것도 괜찮다.



 위에 준비물 중 침낭, 우비, 등산 스틱은 이왕이면 유럽 가서 사는 걸 추천한다. 파리에 큰 스포츠 매장이 있고 가격도 싸다. 침낭, 등산 스틱은 가벼워서 좋았고, 우비는 10유로 정도 했지만 질이 좋아 순례길 도중 정말 알차게 썼다. 내 기억으론 침낭이랑 등산 스틱이 우비보다 더 쌌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에 집에서 라면도 안 챙겨 간다고 한바탕 해서 결국 라면도 몇 개 넣었다. 항상 여행에서 나의 변변치 못한 끼니를 걱정하시는 부모님...ㅎㅎ. 그렇게 18년 4월 17일 나는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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