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출발점까지 (파리 ~ 생장)
4년 만에 다시 온 파리, 반가워~! 일정상 2박밖에 할 수 없는 파리지만 4년 만에 다시와도 좋았다. 그땐 혼자 지도를 펼쳐놓고 이곳저곳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땐 전역한지 얼마 안돼, 구글맵의 위대함을 몰랐던 터라 지도로 이리저리 헤매면서 파리를 걸어 다녔었다.
오랜만에 본 에펠탑은 여전히 파리의 상징답게 아름다웠다. 에펠탑부터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를 통해 루브르 박물관까지,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을 마지막으로 쭉 걸어 다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었다는 것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일일투어를 신청해 몽생미셸 투어를 다녀왔다. 엄마 아빠가 다녀오고 좋다고 한 곳. 가는 길은 정말 멀었지만 웅장한 건물에 사진을 몇십 장 찍었다.
몽생미셸에서 파리로 돌아오는 새벽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이드 분이 깜빡 졸아 파리 전봇대에 그대로 차를 박아버린 것. 앞 범퍼가 다 나갔다. 빨리 달리지 않았기에 나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옆에 앉던 분은 좀 충격이 있으셨나 보다. 가이드 분이 죄송하단 말만 수십 번을 하고, 준 돈으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새벽 3시가 다돼서. 그땐 별 생각없이 괜찮다며 숙소로 돌아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잘못되었다간 내 42일 여행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될 뻔했다.
다음날 2시간 반 정도 자고 일찍 일어났다. 새벽에 정신없이 짐을 싸고 있어도 민박집주인 아주머니는 그때 일어나 친절하게 빵을 챙겨주시겠다. "몸조심하고 순례길 잘 다녀와~!" 여행지에선 항상 사소한 것이 감동을 준다.
파리에서 생장으로 가기 위해선, 몽파르나스역에 가야 한다. 몽파르나스에서 테제베 고속 열차(우리나라의 KTX)를 타고 바욘으로 가서 한 번 더 기차를 타고 생장으로 가야 한다.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찾아볼 것. 참고로 바르셀로나에서 가는 거리가 지도상으론 더 가까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리에서 간다.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난다.....) 2시간 반밖에 못 잔 터라 하루 종일 기차에서 자고 도착할 때쯤 일어났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바욘에서 또 기차가 파업을 했다. 진짜.. 유럽에서의 파업은 일상 중에 일상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대부분의 배낭을 멘 사람들이 어디로 향하길래 나도 따라갔다. 확실히 바욘까지 오니 전 세계에서 순례길을 걸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서 봤더니 다행히 버스를 준비해 두었던 것. 우와... 감사합니다. 살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인 형 1명과 동생 1명을 만났다. 한 살 많은 이형은 2년 전에 순례길을 와본 경험이 있는 형이다. 형이 여권 발급받는데 오래 걸린다면서 빨리 발급받고,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를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갔다. 나랑 동생은 구세주를 발견한 느낌으로 이형 바짓가랑이만 잡고 따라가서 다행히 일찍 순례자의 여권을 받고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3명에서 밥을 먹으러 나왔다. 메뉴는 피자와 맥주. 이 조합은 또 빠질 수 없지ㅎㅎ 각자 여길 왜 왔고,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일상적인 담소를 나누었다. 우리 셋은 오늘 처음 봤지만 벌써 친구가 되어 있었다.
밥을 먹고 도시를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오니, 한국인 누나 2명이 있었다. 이 두 누나는 원래부터 서로 친구였고, 일을 그만두고 순례길을 걸으러 왔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5명이 되었고,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형 한 명 빼고, 우리 4명은 끝까지 함께 했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끝까지 같이 갈 줄은 몰랐었는데.
내일은 드디어 첫출발이다. 정말로 이곳에 왔다. 아직은 실감이 안 나지만 내일 가장 힘든 구간인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내 여행의 대장정을 용기 있게 시작해보려 한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