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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Sep 28. 2021

피레네 산맥 넘기, 처음이 가장 힘들다.

04. 산티아고 순례길 Day1,  시작

 산티아고 순례길 Day1, 생장 ~ 론세스바예스, 25.24km


 "4년 전 이 길을 알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자신에게 했던 수많은 약속들, 그동안 지나쳐 버렸던 소중하면서 사소한 순간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 위해, 또 앞으로 있을 수많은 선택과 두려움에 대해 용기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멋있게 이 길을 걷겠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올라가는 `18. 04의 나


 어제 만났던 TS형, JC동생 3명에서 새벽 5시 반에 먼저 출발했다. 파리에서 추가로 구입한 우비, 등산 스틱으로 인해 내 배낭의 무게는 15kg까지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언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이제 올게 왔구나...!!"


생장에서 다음 알베르게인 론세스바예스까지는 산티아고 프랑스 길에서 가장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바로 약 1400m 정도 높이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뭐든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 길도 처음이 가장 어렵다. 아직 내 어깨에 배낭의 무게도 적응이 안됐는데 언덕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TS형 말로는 이제부터 죽었다고 생각하고 올라가면 된다더라....ㅎ


 올라가다 보니 해가 떴다. 어둠 속이라 안 보였는데, 해가 뜨니 저 밑에서 순례자들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렇게 한 2시간 반 정도 올라갔을까? 서서히 지쳐 갈 때쯤, 옆에 계신 프랑스 할아버지께서 말을 거쳤다.


 할아버지 : Buen Camino~!

 나 : Buen Camino~! (순례길에서는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항상 인사를 한다.)

 할아버지 : 여기 처음 오니?

 나 : 네 처음 와요! 할아버지는요?

 할아버지 : 난 이번이 5번째야ㅎㅎ

 나 : 5번이요????? (매우 소름.......)

       할아버지! 이 산 얼마나 남았어요? 한 10시 정도까진 올라갈 수 있나요?

 할아버지 : 10시라고?ㅎㅎ 아직 반도 안 왔어 친구야ㅎㅎ 한 12시까지는 올라가야 돼. 좀만 더 올라가면 알베르게가 하나 있으니깐 거기서 간식 좀 먹고 가~!


 할아버지는 쿨하게 올라가셨다. 와.. 이렇게 많이 올라왔는데, 아직 반도 안 남았다니. 5번째라는 할아버지 말씀에 소름 돋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아직 반도 안 올라왔다는 것에 또 소름 돋았다. 할아버지 말대로, 쉴 수 있는 산장이 하나 나와한 20분 쉬고 다시 출발했다.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계속 올라가며 경치 좋은 푸른 하늘도 보고, 순례길에서만 볼 수 있는 표시도 보고,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노란 화살표에서 내 배낭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고~!

왼쪽. 15 kg이 넘는 내 배낭과, 노란 화살표,  오른쪽. 정상 올라가기 전 유일하게 있는 푸드트럭

 힘들어 지쳐갈 때쯤, 푸드트럭이 드디어 나왔다. 이 푸드트럭은 정상에 올라가기 전 유일하게 있는 매점과 같은 곳으로 대부분 여기서 쉬었다 간다. 그냥 올라가는 사람은 나중에 후회할 테니 쉬었다 가시길...ㅎ

참고로, 자주색 담요에 덮어져 있는 건 가방만 있는 게 아니라 애기도 있었다. 내 기억으론 저 아저씨는 애기와 가방을 등에 메고 와이프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정말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상상 이상으로 세상에 대단한 사람은 많다. 

 

 다시 또 올라갔다. 숨이 가파르게 찼고, 처음 같이 올라갔던 TS형과 JC와 우린 더 이상 서로 말이 없었다. 각자의 걸음과 호흡에 맞춰 자기만의 페이스로 길을 올라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말에 젖 먹던 힘까지 올라왔다. 정상에 올라갔을 때, 아마 12시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왼쪽. 고지를 향해 열심히 올라가는 순례자들,   오른쪽. 피레네 정상 (내가 기억하기론....)

 그렇게 정상을 찍고 다시 내려왔다. 론세스바예스는 피레네 산맥을 내려오는 중간쯤 위치했고, 또 한두 시간 이상 걸어서 내려왔다. 산은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올라가는 것만큼 내려오는 것도 힘들다. 그러기에 방심하지 말고,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아직 적응도 안된 어깨에 15kg의 배낭을 메고 산을 내려오면, 두 다리에 들어가는 힘도 더 커진다. 다 올라왔다고 무리하게 내려가서 다친 사람도 있다기에, 다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조심히 내려와야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 알베르게에 들어가는 동안, 뒤에 JM, HJ누나도 도착했다. 다들 녹초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5명은 첫날 가장 힘들 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미리 한국에서 등산화와 배낭을 메고 순례길을 걷기 위한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확실히 첫날은 어깨도 아프도, 다리도 많이 아프다. 나는 걷는 거 하나는 자신있었기에 당연히 연습은 따로 안했고,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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