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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Sep 29. 2021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차이

05. Day2, 론세스바예스 ~ 주비리, 23.1km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났다. 배낭을 메는 순간 어깨의 통증이 그대로 느껴졌다. 어제 처음으로 15kg의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기 때문에 어깨가 많이 놀랐나 보다. 다행히 2일 차부터는 길이 평탄해지고, 1시 정도면 도착한다는 TS형의 말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에 유독 새소리, 벌레소리가 많이 났다. 주변에 걷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골 풀숲을 새소리가 채워주었다. 조금 걷다 보니 말들도 보였다.  

왼쪽. 새벽부터 열심히 아침을 먹는 말들,                                  오른쪽. 주비리까지 남은 거리를 나타내는 순례길 이정표


 시작은 생장 때부터 만난 5명이 함께 했지만, 각자의 걷는 속도와 생각이 다르기에 점점 따로 걸었다. TS형과 JC는 계곡을 만나 계곡에서 좀 놀 다간다고 했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홀로 계속 걸어갔다. 한 1시간 더 걷다 보니 먼저 출발한 누나 2명을 따라잡았다. 


 누나 2명은 오늘 가능하면 다음 목적지인 팜플로나까지 가겠다고 했다. 지금 예상대로라면 12시에 도착하는데, 오늘 하루를 여기서 끝내기엔 아쉽다고 했다. 분명 그랬다. 보통 순례자들은 새벽 5시~6시 사이에 일어나 6시 정도엔 출발한다. 그리고 오후 1~2시 정도면 목적지에 도착해, 각자의 방법으로 쉰다. 빨래를 하고 씻고,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사람들끼리 얘기도 하며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나는 주비리에 머물겠다고 했다. 분명 한국에서 낮 12시에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여태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순례길이기에 주비리까지만 가기로 했다. 적어도 여행해서 만큼은 조급해지고 싶지 않았다. 대학생 최근 3년간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순례길에선 느끼고 싶었고, 내가 내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고 싶었다.



 걷는 속도와 생각의 차이는 순례길에서 생각보다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고, 아주 특별하며, 유일한 존재이다. 사람들마다 외형이 각자 다르듯이 걷는 속도와 체력도 다 다른다. 어떤 사람은 힘들어서 중간에 쉬고 싶어 하고, 어떤 사람은 체력이 남아 더 가고 싶어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걷는 보폭이 크지만, 어떤 사람은 키가 작아 걷는 보폭이 작다. 이런 작은 차이 때문에 조금씩 균열이 발생해 갈등이 생기곤 한다.


 우리 삶도 생각해보면 마찬가지다. 학생 때 프로젝트를 할 때, 회사에서 업무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각자가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르다. 때로는 그로 인해 충돌도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차이는 지금은 웃어넘길 수 있는, 대부분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된다.  


  순례길에서는 혼자 걷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지극히 정상이다.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결국 각자의 잘못된 속도로 함께 걷다가 서로 안 맞다는 것을 빨리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여기서는 누가 먼저 간다거나 쉬었다 간다고 해서 말리는 사람이 없다.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회사에서는 맨날 다른 의견을 내면 자기 의견이랑 다르다고 설득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주비리에 12시 반쯤 도착했다. 뒤에 오던 TS형 JC와 같이 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누나들이 다시 돌아왔다ㅎㅎ. 생각해보니 이제 2일 차인데 팜플로나까지 너무 멀다는 것. 하긴... 거기까지 가면 오늘 48km를 걷는 건데 무리일만 하지..ㅎㅎ 


 이렇게 둘째 날은 무난하게 끝났다. 어깨의 통증은 여전했고,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내 두 발에 광합성도 열심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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