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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06.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로스 아르고스~로그로뇨, 29.4km

09. Day 6, 한국에 대한 걱정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은 우선 내 자신이 바깥으로 눈을 돌릴 때만 경험으로 남는다.


 오늘은 순례길에서 마지하는 두 번째 큰 도시인 로그로뇨로 떠나는 날이다. 오늘은 유독 직선거리가 많았다. 한 한 시간 반 정도 걸었을까. 다음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고 쉬면서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분은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어린 나이에 여기에 온 게 대단하고 부럽다더니, 건강하게 잘 걷는 거 같아 좋아 보인다더니, 인상이 좋아 보인다더니. 그.... 런.... 가.....ㅎㅎ


왼쪽. 새벽의 끊임없는 직선길,    오른쪽.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인위적인 돌들

 아주머니는 힘들어서 짐을 다음 마을로 보내고, 가벼운 가방만 챙겨서 걸어 다니셨다. 수많은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 프랑스 길의 인프라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평균적으로 5~6km마다 마을에 알베르게가 있다. 내가 알기로는 프랑스길의 알베르게가 300개가 넘는다. 그렇기에 힘들면 어디서든 멈춰서 숙박을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가방을 굳이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은 배낭의 무게를 견디면서 걷는 것이 쉽지가 않다. 비포장도로에다가 산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알베르게에 미리 다음 목적지와 숙소를 알려주면, 해당 알베르게에서 목적지로 배낭을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순례길을 걷는다.


 이 날 나는 하나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 취업이 확정된 회사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는데, 하필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기간이랑 겹쳤던 것. 정해진 날 신체검사를 받지 않으면, 취업에 자동 취소가 될 수 있었기에 서둘러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일전에 같은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한국인 아저씨가 상황이 안되면 아마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기에 나는 계속 걱정을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대한 일을 잊고 여기까지 왔는데, 머릿속에 자꾸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중이 안됐다. 까미노 길을 걷다가 어떤 일이 생기면, 특히 먼 한국에 관한 일이 생기면, 마음속 한 구석에 그 일에 대한 걱정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국제전화가 되는 분을 만나 전화도 여러 차례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이미 회사에 들어가 인사 쪽에서 일하고 있는 인턴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원래 전화를 잘 안 받는다 하더라... 어쩔 수 없이 같은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는 누나에게 부탁했다.


 이날 나는 주변 경치를 거의 보지 못했다. 까미노에서 마주하는 낯선 풍경과 사람들, 눈앞에 아름다운 자연과 세상의 수많은 일들은 내가 관심을 기울일 때만 비로소 나의 경험이 되었다. 정적인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선 나 자신부터 바깥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기억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례길의 인위적인 흔적들


왼쪽. 알베르게 채크인을 기다리는 순례자들,  오른쪽. 성당


 계속 걷다가 어느 순간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로그로뇨는 역시 큰 도시였고 주변 관광이랑 성당도 들렀다. 순례길에서 나는 성당을 꽤 자주 갔다. 스페인은 거의 전부가 천주교를 믿기에, 성당 내부가 화려하다. 많은 순레자들이 굳이 종교를 떠나서 성당에서 미사를 지냈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한 것은 성당을 안 간 지 8년이 되었고, 신부님이 스페인어로 미사를 했지만 어떤 타이밍에 무엇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성당 내부의 고요함에 때로는 나 자신을 맡겨, 오늘 하루를 돌아보곤 했다.


 오늘 로그로뇨에 처음 한 3일 동안 같이 걸었던 누나 2명과 한국인 동생 1명이 따라왔다. 하루 정도 차이가 났고, 이제 다시 보기 힘들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따라온 것이다. 내가 먼저 가기에 오기에 생겨서 따라왔다고 한다. 역시... 한국인의 근성이란....ㅋㅋㅋ 누구한테 질 수는 없지ㅎㅎ 그렇게 한국인 형 한 명 빼고 우리 4명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그날 저녁에 그동안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을 대부분 만났다. 서울대 친구, 연극영화과 친구, 나랑 같이 와인 먹으며 걸었던 형, 처음 같이 걸었던 누나 2명, 동생 1명 모두 모여 저녁을 술로 적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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