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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03.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로르카~로스 아르고스, 31.7km

08. Day5, 공짜 와인은 사랑입니다.

 "와인을 마시며, 적당히 취한 상태로 자연속을 걸어다니는게 나는 좋다."

 

 오전 6시, 사람들 소리에 겨우 일어났다. 어제 무리해서 41km나 걸었고, 밤에 와인을 그렇게 마셨으니 잘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래도 가야만 했기에 서둘러 7시에 나왔다. 순례길에서 7시에 출발하는 것은 사실 늦은 것이다. 유럽 특유의 건조함의 특성으로 인해 해가 중천에 뜨면 많이 덥다. 그렇기에 더위랑 싸우며 걷기보단, 새벽에 어느 정도 서늘한 날씨 속에서 걷게 된다. 보통은 늦어도 6시 전에 출발하고, 걷다보면 한 한두시간 있다가 해가 뜬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이 걷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왼쪽. 늦게 나와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한 순례길,  오른쪽. 순례길의 흔한 풍경


 오늘 목표는 로스 아르고스(Los Arcos)까지 걷는 것이다. 여기까지 가면 같은날 출발한 사람들보다 하루치를 더 먼저 걷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공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프랑스길을 걷다보면 공짜로 와인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딱 한 곳 있다. 오늘이 바로 그곳을 지난다. 오늘 걸으면서 와인을 얼마나 많이 먹느냐에 따라 목적지가 달라지게 된다ㅋㅋㅋㅋ. 어제 같이 저녁을 먹었던 Mark와 한국인 형 모두 페트병에 물 대신 와인으로 가득 채워 갈거라고 했다. 한 2시간쯤 걸었을까. 수도꼭지에서 물 대신 와인이 나오는 장소에 도착했다.


왼쪽.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   오른쪽. 와인님을 두손으로 공손하게 맞이하는 나


 두손 모아 수도꼭지한테 인사드리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와인을 받았다. 와인은 사랑이다ㅎㅎㅎ. Mark형은 더 큰 병에 와인을 담아서 갔다. 전해 듣는 말로는, 어떤 사람은 여기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 중간에 길바닥에서 낮잠도 잔다고 한다. 그래도 전혀 상관 없다. 취해서 길바닥에 누워있다고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한국인 형이랑 와인을 마시면서 계속 걸었고, 중간중간에 쉬기도 했다. 이 형이랑은 나랑 걸음도 비슷하고, 쉬는 타이밍도 비슷해서 좋았다. 이렇게 쉬는 타이밍과 걷는 타이밍이 맞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열두시쯤 됬을 때, 아르고스까지는 12km정도가 남았다. 2시간 넘게 걸어야 하는 거리고, 우리 둘은 와인에 취해 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


왼쪽, 중간. 와인을 마시며 자연 속을 걷고 있는 나,  오른쪽. 무슨 꽃이지... 유..채..꽃...?


 사람마다 여행에서 추구하는 가치관과 좋아하는 여행이 다르지만, 나는 에전부터 자연을 바라보는 여행을 좋아했다. 때로는 경이로운 자연에, 아름다운 자연에 그냥 한 두시간 멍하니 서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이 곳 순례길에서는 와인을 마시면서 적당히 취한 상태로 걸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한테 편안함을 준다고 할까. 그냥 좋다.


오늘의 목적지, Los Arcos

 그렇게 오후 3시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내일은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두 번째 큰 도시, 로그로뇨(Logrono)로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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