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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17.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빌라프랑카~리오피코, 25.15km

13. Day 10, 영하 온도에서의 집중력

시련일 뿐, 해내야겠다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해내라.


 순례길에서 마주하는 3번째 큰 도시 부르고스까지 가려고 했으나, 거리가 38km나 되기에 이틀로 끊어서 가기로 했다. 오늘 새벽에 나오자마자 어제 외국인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했는데 정말이었다.


 알베르게에서 나오자마자 오늘은 산을 올라갔는데, 맞바람까지 불어서 체감 온도는 영하보다도 더 낮은 느낌이었다. 보통 4~5월의 순례길은 기온이 자주 바뀐다. 다른 스페인 지방보다는 고도가 높은 편에 속해 낮에 햇볕이 강할 때는 30도까지도 올라가지만, 밤에는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래서 잘 때 경량 패딩을 입고 경량 침낭 안에 들어가 잠을 잘 때도 많다.


 그리고 오늘처럼 날씨가 안 좋다면 영하로 떨어질 때도 있다. 보통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럽다 보니 순례자들은 경량 패딩 또는 바람막이 정도는 꼭 챙겨서 다닌다. 문제는 이 경량 패딩이 영하의 날씨를 감당하기엔 매우 춥다는 것! 오늘은 걷다가 새벽에 눈도 내렸다. 이전에도 겨울에 스페인 여행을 와봤지만 4월 30일에 눈이 내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4년 전 겨울에 바르셀로나를 갔을 때는 겨울 날씨도 아니었고, 옷도 가볍게 입고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따뜻했는데 여기는 차원이 달랐다.


왼쪽. 나라별로 있는 화살표,  오른쪽. 산에서 발견한 이상한 느낌의 조각물들


 영하의 날씨 속에서 우리는 말도 없이 걸었고, 발걸음도 무척 빨랐다. 빌라프랑카(villafranca)에서 다음 마을까지는 약 12km 되는 거리였는데, 다들 빨리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생각만 했다. 이때 걸어가면서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찬바람과 눈, 영하의 날씨가 나를 괴롭힐 때, 나는 다음 목적지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직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중력. 걸을 때 무의식적으로 생각난 단어였다. 어떤 일을 할 때, 공부를 할 때, 집중력을 가지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라고 하지만 실상을 그게 어렵다. 계속 집중을 해야 하는 순간에 다른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생겨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떠올라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경험상 시간이 많을수록, 여유가 많을수록 생각은 여러 가지로 확장되어 집중력을 떨어트리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집중력은 주변에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에 닥쳤을 때 더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오늘 이 길에서 눈도 맞고, 바람도 부는 추위 속에서 다음 마을이라는 목적지 외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날씨가 좋았을 때는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결국 집중력이란, 여러 일이 동시에 닥쳤을 때, 시간을 쪼개어 "이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낸다"라는 것이 아닐까? 정말 날카로워지고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면, 적어도 목표로 잡은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오직 목표만 생각나게 된다. 집중력이란 그런 것이다. 시련만 있을 뿐 실패할 리가 없다.


 당신이 해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내겠다고 결심하라. 그리고 결심한 일은 반드시 실천하라.


카페에 겨우 도착해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인 후 다시 산을 내려갔다. 산을 내려가면서 오랜만에 풀을 뜯어먹는 소도 봤다. 소들은 근데 안 춥나......? 신기하긴 하네,,,




 산을 내려오니 이제 도로가 보였다. 오늘 코스는 처음에 산을 탔다가 다시 도로를 갔다가 다시 산을 올라가는 코스였다. 도로로 나오니 이제야 푸른 하늘이 좀 보였고 확실히 날씨가 조금 괜찮아졌다. 차도 거의 안 다니는 도로에서 느낌 있게 사진도 한 컷 찍고, 다시 산에 올랐다. 두 번째 산을 올랐을 때는 날씨는 괜찮았지만 돌이 너무 많았다. 돌도 좀 뾰족하게 박혀 있는 돌들이 너무 많아서 밟을 때마다 발이 아팠다.



 산에 올랐더니 대형 십자가가 보였고 십자가 앞에서 잠깐 멍하니 있었다. 오래돼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산 위에서 저 멀리 부르고스가 보였다. 가까운 줄 알았는데, 도시에 도착하는데만 3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결국 오늘 목적지인 Rio Pico로 왔다.


 오늘은 25km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길이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프랑스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부르고스로 떠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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