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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16.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라데실라~빌라프랑카, 26.13km

12. Day9, 상대방을 위한 배려

순례길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서로를 붙잡지 않고 이해해주는 '배려'가 있다.


 우와... 일어났는데 7시 30분이다. 그것도 JC(동생)이 겨우 깨워서... 누나들도 이제야 일어났다. 그동안 많이 피곤했던 것일까. 누나들은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먼저 가라고 했고, 동생과 함께 부랴부랴 나왔다.


 오늘은 벨로라도라는 도시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거리상으로는 12km만 걸어도 되고, 천천히 걸어갈 예정이었다. 문제는 그의 다리였다. 오늘 그의 상태는 어제보다 더 안 좋았다. 눈에 띄게 절뚝거리는 게 보였고,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그의 다리 상태로 봤을 때, 어제 33km를 걸어가면 안 되었다.


  나 역시 천천히 걸어갔으나, 걸음걸이를 맞추려 해도 그는 한참 뒤에야 따라왔다. 천천히 걸어가려 해도 사람이 이미 습관화된 속도를 바꾸기는 나 역시 쉽지 않았다. 걸어가면서 뒤에 보이는 그를 기다리면서 계속 쉬었다. 사실 같이 걷는 그도 자기 때문에 천천히 가는 나 때문에 의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3시간을 걸었을까. 오늘의 목적지인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벨로라도에 도착했을 땐 11시가 이제 넘었고, 알베르게가 문을 열려면 적어도 3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봐도 하루가 너무 일찍 끝난 것. 그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자기는 오늘 여기서 하루 푹 쉬고 내일 걸을 거니깐 먼저 가라고 했다.


 그 말은 '형이 가고 싶은 거 아니깐, 난 괜찮으니깐 먼저 가'라는 뜻이었다. 그게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서로를 붙잡지 않고 이해해주는 순례길에서의 '배려'였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같이 쉬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누나들이 도착했고 우리가 이번엔 얘랑 같이 쉬었다가 나중에 따라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었다. 그렇게 인사를 한 뒤 나는 다시 혼자 길을 떠났다.


순례길다운 신발


 벨로라도에서 빌라프랑카(Villafranca)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하늘은 어두웠고, 맞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니 결국 비랑 우박이 쏟아졌다. 사실 우박은 한국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날씨가 추워져서 생기는 현상인 건가...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비가 정말 많이 내렸다. 맞바람과 겹쳐서 비가 내리니 우비가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길을 걷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무리 비가 내리고, 우박이 쏟아지고, 바람이 불어도 나는 계속 가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어서 빌라프랑카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안 났다. 우리 삶에서도 앞으로 수많은 시련이 다가올 텐데, 그럴 때마다 결국 맞서면서 계속 나아가야만 한다. 멈출 수는 없고 돌아가는 것과 나가아는 것 외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결국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빌라프랑카에 도착했고, 한두 시간 정도 있다가 누나들도 도착했다. 그리고 거기서 또 다른 한국인 친구 BY를 만났다. 그렇게 누나 둘과 새로운 남자'인'친구 BY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 했다. 누나들은 우비가 찢어졌다고 한다.


 우리끼리 조용히 와인을 먹고 이제 들어갈때 쯤 한 외국인 친구가 지나가면서 오늘 비 와서 내일 아침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 소식이 있다고 했으니, 옷을 단단히 껴입고 가라고 했다.

 4월 말인데 눈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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