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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l 05. 2019

내가 모르는 사이,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

오랜만에 둘째에 대한 이야기

아이가 한창 성장할 시기만 되면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첫째 때도 그랬다.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어 다니고, 한발 한발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지 못했다. 야근은 물론 주말 하루는 꼭 출근을 했을 정도로 바빴다.


최근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주말에 일을 하긴 했지만 집에서 해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한 것, 또 아이가 어떻게 커가는지 잘 보지 못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둘째가 태어난 지도 벌써 200일이 지났다. 첫째 때는 200일라고 자그마한 케이크 하나를 사서 조촐하게 파티도 해주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아내도 나도 다 지쳐 있어서 챙겨주지 못했다. 나중에 둘째가 컸을 때 누나에게는 있는 기념사진들이 자기에게는 왜 많이 없냐며 서운해하지는 않을지.


이제 둘째는 밤에 잠을 꽤 잘 잔다. 보통 내가 퇴근하기 전 아내가 아이를 먼저 씻겨 놓고 잘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내가 집에 도착하면 둘째를 재우러 들어가는데 그때가 7시 반쯤이다.


그로부터 다음날 아침 6시 정도까지 통잠을 잔다. 간혹 새벽에 깰 때도 있지만 공갈젖꼭지를 물리고 토닥거려주면 금세 다시 잠이 든다. 얘는 언제쯤 밤잠을 자려나 싶을 만큼 새벽에 많이 깨서 우리를 힘들게 했었는데, 아이가 크긴 컸나 보다 싶다.


신체적으로도 그렇다. 뒤집고 되집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는 팔을 땅에 딛고 기어가는 법을 터득해 집안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닌다. 호기심이 많은 건지, 잠깐 한눈을 팔기라도 하면 전혀 엉뚱한 곳에 가서 온갖 물건을 입에 가져가 낑낑대며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둘째가 지나간 자리엔 항상 흔적이 남는다. 바닥이 반들반들, 침이 흥건하다.


사고(?)의 현장을 뒤늦게 목격하면 아이 이름을 크게 부른다. 그러면 자기 이름인 줄 아는지 나를 쳐다보고는 씨익 웃어 보이는데, 그 모습이 참 예쁘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아 얼굴을 자주 비추지 못하는데도 나를 알아보는 건가 싶어 소소한 감동을 느낀다.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일할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아이가 옆에서 울거나 낑낑대고 있으면 나는 짜증을 내곤 했다. 안아주거나 바닥에 내려주고 함께 놀아주기보다는 물지도 않는 공갈젖꼭지와 치발기를 재차 손에 쥐어주기만 했다. 회사 일이 많은 건 아이 탓이 아닌데, 안 좋은 감정의 화살이 괜히 아이를 향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둘째는 나를 보면 항상 씨익 웃어준다. 내가 자기에게 어떻게 했든, 저는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듯 그렇게 해맑게 웃어준다. 사랑스럽고 고맙고, 우리를 힘들게 할 때는 밉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참 많은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둘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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