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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l 19. 2019

아내가 템플스테이를 택한 이유

방송 제작 일정이 끝나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아내 혼자 여행 보내기. 둘째 출산 이후 아이들과 하루도 떨어져 있지 못하고 정신없이 지내온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 싶었다.


프로그램 종영 몇 주 전부터 아내에게 말했다.


"나 7월 초에 프로그램 끝나니까 그때 혼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

"혼자 어딜 가~ 딱히 갈 데도 없어."

"갈 데가 왜 없어? 보내줄 때 가. 바람도 좀 쐬고~"


아내는 나 혼자 아이 둘을 보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선뜻 수락하거나 좋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고, 각오가 돼 있었다. '까짓 거 아내도 하는데 나라고 애 둘 혼자 못 볼 이유가 뭐 있나'하고 말이다.


지속적으로 아내의 등을 떠밀어 결국 여행을 가겠다는 말을 끌어냈다. 그런데 아내가 결정한 여행지는 의외였다.


"그럼 나 친구랑 템플스테이 하고 올게. 1박 2일."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그간에 쌓인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씻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아내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긴, 어디 사람들로 북적대는 관광지도 아니고 한적한 절이라면 비록 하루 이틀이라도 휴식을 취하기엔 제격일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왜 하필 템플스테이였을까? 나라면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을 것 같았다. 산이든 바다든, 기분 전환할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더 있으니까 말이다.


템플스테이로 떠나던 당일, 아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였다. 내가 군에 입대하고 처음 100일 휴가를 나설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싶었다.


아내가 그렇게 홀가분해 보였던 이유를, 나는 아이 둘과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돌아서면 간식 달라, TV 보여달라, 놀아달라 재잘재잘대는 첫째 때문에 한 순간도 조용할 때가 없었고, 이제 막 기어 다니는 데 재미를 붙인 둘째는 잠깐만 한 눈을 팔아도 어딘가로 가서 사고를 쳤다.


얼른 날이 어두워지고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아내가 아이들을 왜 그렇게 빨리 재우고 싶어 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그제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내가 떠나기 전, 둘째 먹일 이유식을 잔뜩 해놓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나는 맥주 한 캔에 영화를 보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유일하게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그렇게 잠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만 바라보는 아이 둘도 잠에서 깨어난다. 시끌벅적 정신없는 하루가 또 시작된다.


아내는 둘째 출산 후 8개월의 시간을 그렇게 보냈던 것이다. 어쩌면 템플스테이는 아내에게 가장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아내는 <핀치>라는 온라인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이 지금의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했는지, 그래서 지금은 행복한지 등에 대한, 꽤 심층적인 인터뷰였다.


https://thepin.ch/think/pGeTb/women-in-30s-7


아내의 삶에 쉼표가 없어진 건 최근의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 입시를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고, 대학 진학 후에는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좀 생활이 나아지려나 싶었는데 나를 만나 결혼을 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기보다 아이들이 우선인 삶을 살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고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템플스테이 후 한껏 밝은 표정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제안했다.


"이번에 해보니까 혼자 애들 보는 거, 2박 3일까지도 괜찮을 것 같아. 다음엔 좀 더 길게 보내줄게~"


과연 아내는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선택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내도 나에게 쉼표를 찍어주지 않을지 내심 기대하게 된다. (알고 보면 나의 진짜 목적은 이거였...ㅋㅋ)


어쨌든 아내가 행복해야 나도,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불변의 진리. 매번 아내의 상황을 알아주는 좋은 남편은 아니지만, 휴식이 필요할 땐 기꺼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도울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이렇게 글을 써놨으니 이제 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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