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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Sep 26. 2019

아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

어쩌다 보니 시리즈가 된 것 같은 '아내가 ~한 이유' 두 번째 이야기

아내는 게임을 즐겨한다. 특히 아이들이 잠들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스마트폰을 놓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대략 90퍼센트의 확률로 아내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는 꼭 한 마디씩 한다.


"재밌니...?"

"그 게임 아직도 해? 대단하다 정말."


글로 써서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봐 얘기하자면 비꼬는 투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절대. 한두 가지 게임을 꾸준히 하는 아내를 보면서 느끼는 '신기함', 거기서 비롯된 감탄사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와 연애할 당시, 우리는 의외로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는 걸 발견하고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서로 비슷한 성향에 끌린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 즐겨 듣는 음악, 선호하는 영화 장르 등 취미의 영역에서 접점이 많지 않았다. 게임도 그중 하나였다.


나도 게임을 아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금은 완전 고전게임이 되어버린 포트리스부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카트라이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대중적인 게임들까지 웬만하면 다 한 번씩은 건드려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에도 나는 깊게 빠져들지 못했다. 그나마 피파나 슬러거 같은 스포츠 게임에는 재미를 붙이기도 했지만 그 조차도 오래가지 않았다.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잘해야 한다. 그래야 재미도 있고, 그만큼 즐기면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게임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소질이 없는 건지 영 실력이 늘지 않았다. 전적에 패배만 쌓여갔다. 꼭 대전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한계를 느꼈다. 남들은 게임을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쌓이는 듯했다. 그러면 이내 흥미를 잃기 마련이었고 곧 "에이, 안 해!" 하고 손을 떼게 됐던 거다. 차리리 그 시간에 TV를 보거나, 아무튼 다른 걸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에게 '게임'은 '끈기'와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한 게임을 오래 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시간을 쏟아 끝내 잘 해낼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뭐 안 좋게 보면 '결국 게임 중독인 거 아니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나쁘게만 보지는 않는 편이다. 나처럼 끈기가 없으면 감히 쉽게 즐길 수 없는 취미가 바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상 우리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있는 모습을 봤을 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내가 요즘 즐겨하는 게임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과거 전력을 살펴보면 어쨌든 아내는 '프렌즈팝'류의 퍼즐 게임이나, '아이러브커피'와 같이 무언가 키워나가는 게임을 좋아하는 듯하다. 둘 다 나와는 맞지 않는 종류의 게임이다. 잘하게 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글을 본 아내가 요즘 본인이 하는 게임 이름을 추가해 달라며 이미지를 보내왔다. '꿈의 집'과 '딜리셔스 월드'. 최근 새 게임을 시작한 모양이다. 특히 오른쪽 화면이 생소하다.

프렌즈팝의 경우는 출시 초기 누구나 하던 게임이라 나도 대세를 따라 해 봤는데,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내 실력으 '클리어'가 불가능하다는 게 느껴졌다. 그걸 깨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난이도가 너무 높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곧 게임을 접었다.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받는다. (이미지 출처 : 전자신문)

아내도 한창 프렌즈팝에 빠져있던 시절, 게임을 하며 투덜거리곤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와는 전혀 달랐다. 카카오 측이 계속 업데이트를 하는 바람에 스테이지가 계속 추가돼, 게임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는 거였다. 벽에 부딪혀 멈춰버렸던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어쨌든 한 단계 한 단계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나는 "그게 그렇게 스트레스면 적당히 하고 그만하면 되지 않느냐"며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 같은 하수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몇 마디 덧붙였다.


"한 번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지."

"그리고 이게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야. 일이 힘들거나 뭔가 마음 복잡하면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게임을 하면 그렇게 되거든. 마음이 좀 풀려."


아내의 말을 들으니 아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게임에 열광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내 입장에서 완벽히 이해되진 않았다. 게임을 즐기면서 잘하는 건, 그리고 꾸준히 하는 건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최근 읽고 있던 책에서 뜻하지 않게, 아내가 한 말에 대한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아, 그게 정말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칠 정도였다.


그 책은 바로 <타이탄의 도구들>이었다. 투자자로 유명한 팀 페리스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세계적 '거장(titan)'들의 성공 비결과 삶의 지혜들이 가득 담겨 있다.


아래는 내가 주목한 내용 중 일부다.


세계적인 게임 프로듀서이자 디자이너인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 박사는 미래연구소의 연구회원이다. (...) 그녀는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한 '주목해야 할 10대 혁신가',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비즈니스 분야 가장 창조적인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녀의 게임에 관한 테드 강연은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했다.

내가 제인을 소개하는 이유는 하나다. 그녀의 '테트리스 예찬론' 때문이다. (...) 최근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테트리스를 비롯한 캔디 크러시 사가나 비주얼드 등의 게임이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는 데 탁월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제인은 이렇게 말했다.

"게임을 하면 시각적인 플래시백(벽돌이 떨어지거나 조각들의 위치가 바뀌는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뇌의 시각처리 중추를 차지하기 때문에 우리가 갈망하는 것(혹은 집착하는 것, 매우 시각적인 대상)을 떠올릴 수 없게 된다.

이 효과는 3~4시간 정도 지속된다. 나아가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한 뒤에 테트리스를 하면 그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걸 막아주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들을 완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와우, 놀랍다. 흔히 게임하면, 집중력을 흩뜨리고, 숙면을 방해하며, 은둔형 외톨이를 만든다는 부정적 이미지로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게임 또한 얼마든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힐링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음을 제인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 <타이탄의 도구들> '3장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들의 비밀 : 08 생각을 쉬게 하라' 중


그렇다. 아내는 자신이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지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깨닫고 있었던 거다. 더군다나 그 근거가 되는 내용이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런 책에 나오다니. 아내는 타이탄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아니, 그녀는 이미 타이탄인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어떤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뭔지, 알고 있는가? 잘 떠오르지 않다.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뭔가 하나는 있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물어오면 바로 대답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의식적으로 '나는 이렇게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하는 게 없다는 뜻이다. 게임을 다시 좀 해봐야 하나 싶다.




평소 즐겨하지는 않더라도 스마트폰에 게임 하나쯤 설치해두면 어떨까. 스트레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가, 혹은 배우자가, 또는 우리의 아들 딸들이 게임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보는 사람으로선 쉽지 않겠지만) 이해하고 존중해주면 좋겠다.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문제겠지만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은, 단지 지금의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싶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 '아내가 ~한 이유'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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