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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ug 30. 2019

브런치에서의 1년을 돌아보았다

오늘브런치를 시작한 지 정확히 1년이 된 날이다. 첫 글 발행을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브런치 계정은 2017년 11월에 만들었다. 처음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던 건 2018년 3월이 끝나갈 무렵의 일이었는데, 당시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방황의 시기였다. 내가 육아휴직으로 회사에서 자리를 비운 기간은 4개월. 100일이 조금 넘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휴직 직전까지 나와 함께 했던 제작진들은 내부 사정으로 대부분 교체가 된 상황이었고, 기존에 맡아왔던 프로그램 또한 내 손을 완전히 떠난 듯 보였다.  


모든 것이 백지상태였다. 무슨 프로그램을 해야 할지, 한다면 누구와 언제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오해가 있을까 봐 미리 밝혀두지만, 당시의 상황은 내가 육아휴직을 썼기 때문에 받은 불이익은 아니었다.)


그렇게 복직과 동시에 새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했다. 세상에 기획만큼 막막한 일이 없다는 걸 느꼈던 게 바로 이때였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지, 그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또 그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인지. 무엇 하나 뚜렷보이는 게 없었다.


'언제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프로그램만 해야 하느냐'며 불평을 늘어놓던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내가 기획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막상 회사에서 멍석을 깔아주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팀장님의 조언을 받아가며 열심히 기획안을 작성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3주 정도 공을 들였던 것 같다.


기획안이 완성되는 대로 보고를 올렸지만 프로그램 제작은 계속 보류됐다. 회의와 수정을 거쳐 다시 보고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더 흘러갔고 첫 번째 기획안은 결국 프로그램으로 만들지 않는 걸로 결정됐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엄습했다. 기획안을 설득력 있게 만들지 못한 내 잘못이 가장 컸지만, 그걸 인정한다고 해서 헛헛한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나는 회사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무기력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나에게 일어난 변화


두 번째 기획안 작성과 더불어 나는 '언제든 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나는 대학생 시절 개설해 놓고 방치해두었던 네이버 블로그를 깨워 글을 썼다. 책이나 영화 감상평을 쓰기도 했지만, 가장 주력했던 건 '아빠의 육아휴직'에 관한 이야기였다.  


https://blog.naver.com/hw7002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는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그 덕에 내 블로그 방문자 수도 단기간에 큰 폭으로 증가했다. 몇몇 글은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방송국으로부터 인터뷰, 출연 제안이 오기도 했다.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생긴 변화였다. 여전히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자신감 붙었다. 브런치에 도전하고 싶었다. 블로그와는 다르게 작가 신청을 하고, 그를 통해 선정된 사람만 글을 발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승부욕을 자극했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썼다. 5개월이 지났을 무렵 두 번째 도전을 했고 2018년 8월 28일, 마침내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뛸 듯이 기뻤다. 브런치 작가가 됐다고 해서 어디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다른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그 당시 내 감정의 정체는,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이후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면서 묘한 쾌감은 계속 이어졌다. 카카오채널이나 다음 포털사이트 메인에 내 글이 게시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조회수가 폭발했고, 구독자 수도 늘어났다.  

2019년 1월 4일, 정점을 찍은 일간 조회수

몇 백, 몇 천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브런치 작가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어쨌든 조금씩이라도 계속 올라가는 전체 글 조회수와 구독자 수를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이런 얘길 하고 있다니, 나도 어지간히 '관종'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조회수도 좋고 구독자 수도 좋지만, 사실 브런치를 하면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따로 있다. 나에게도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 그걸 꾸준히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소극적,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나로서는 그것만 해도 정말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발행하면 지난 1년 동안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은 75편이 된다.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도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1주일에 1편 이상 글을 써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앞으로도 이런 페이스로 쭉 달려볼까 한다.  쓴 글보다는 자주 쓰는 글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또 좋은 변화를 가져다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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