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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15. 2020

둘째는 안아주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다

저녁이 되면 둘째를 먼저 데리고 불이 꺼진 방으로 어간다. 에너지가 넘치는 첫째는 요즘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많이 늦어졌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아이 둘을 동시에 재우는 것보다 일찌감치 하나라도 먼저 재우면 이후가 훨씬 편해진다.  


그런데 둘째를 재우는 게, 참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잘 시간이 되어도 잠을 자려하지 않았던 거다. 눕혀 놓으면 일어나서 벽을 손으로 두드리거나 범퍼침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등 장난을 치는 듯한 행동을 계속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일어서 있는 아이를 반복해서 눕히고, 또 눕힐 뿐이었다. 졸리지 않은 건가 싶어 안아주기도 해 보았지만 내 품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에 나는 곧 아이를 다시 내려놓곤 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도 안 안아줬더니 이제 안아주는 게 싫은가 보네. 그게 오히려 답답한가 보다.’ 


둘째가 태어나고 첫돌이 되기까지, 아이가 칭얼댈 때 안아주었던 총량을 따진다면 첫째 때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첫째도 손이 많이 갈 시기여서 상대적으로 둘째에게 신경을 못 써줬을뿐더러 그만큼 둘째도 (우리가 보기에) 순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품에 안아주어야만 잠을 자기 시작했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옆에 함께 누워 토닥여주기만 해도 잠이 들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변한’ 것이었다. 둘째는 우리 부부에게 어느새 ‘순한 아들’, ‘안아주지 않아도 잘 자는 아들’로 인식되었는데 잠을 잘 때마다 장난을 치고 떼를 쓰다니. 어떤 때는 둘째를 재우는 데에만 3, 40분, 길게는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점점 아이의 취침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괜히 아이 탓을 하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둘째 돌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깜깜한 방 안에 둘째와 나 둘만 남아 있었는데, 그날따라 나도 모르게 둘째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동안 내가 얘한테 뭘 해줬나’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안아준 적도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아이가 순하다는 건 그냥 내 마음 편하자고 그렇게 생각한  아니었을까. ‘우리 둘째는 안아주는 거 싫어해. 안아주면 오히려 잘 못 자요’라고 말한 것이, 혹시 내가 했던 오해는 아니었을까.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런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아이를 안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뒹굴뒹굴하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 둘째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아 보았다. 아이는 웬일인지 내 가슴팍에 얼굴을 폭 기대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몇 초쯤 지났을까. 배시시 웃으며 내 얼굴을 한번 올려다 보고는 다시 나에게 기대는 것을 반복했다. 마치 ‘나를 안아준 사람이 아빠가 맞나?’하고 확인하는 것 같기도, 그걸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몇 번을 그러던 아이는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내 품에서 잠들었다. 이렇게 잘 자는데, 진작 좀 안아줄 걸. 이번에는 후회가 밀려왔다.


만 0~2세는 주변 탐색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 가족과의 애착을 형성하는 시기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는 "만 0~2세의 교육 키워드는 사랑이다.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아이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 시기 적기 교육의 주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 <머니투데이> 2015. 2. 11.


그날 이후, 나는 둘째를 재울 때 항상 안아준다. 아니, 이제는 내가 안아주기도 전에 둘째가 먼저 나에게 달려들어 안긴다. 역시, '아이가 안기기 싫어한다'는 건 내 오해고 편견이었다. 


'우리 아이는 이럴 거야, 저럴 거야.'라고 정의하는 건 어쩌면 너무나 섣부른 판단인 것 아닐까. 또, 그 아이의 진짜 성향이라기보다는 '아이가 이렇게 커주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나는, '둘째는 안아주지 않아도 잘 자더라'가 아니라 '둘째가 안아주지 않아도 잘 잤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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