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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Feb 05. 2020

밥 잘 먹는 둘째의 역습

이래서 '둘째는 사랑'이라 했던가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묻곤 했다.


"둘째는 마냥 예쁘다면서요. 진짜 그래요?"

"'둘째는 사랑'이라던데. 첫째 때 느끼는 거랑 정말 달라요?"


질문을 한창 받을 당시엔 몰랐다. 둘째에 대해 느끼는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만큼 처음엔 나에게도 둘째의 존재가 낯설었다. 평소 아무리 일찍 퇴근해도 둘째를 마주하는 시간이 기껏 해야 한두 시간뿐이었으니, 아이가 어떻게 크고 있는지 조차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조잘조잘 옆에서 관심을 끌며 내 혼을 쏙 빼놓는 첫째가 있었기에, 둘째보다는 첫째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사실이었다.


요즘은 좀, 아니 많이 달라졌다. 최근 설 연휴와 함께 꽤나 긴 휴가를 보냈는데 그 사이 둘째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경험한 탓이다.



둘째의 역습


15개월 차로 접어든 둘째는 이제 걸음마를 완전히 뗐다. 말도 어느 정도 알아듣는다. 이때가 이리도 사랑스러울 시기였던가. 둘째를 보고 있으면 첫째의 떼 부림에 시달리며 잊혀졌던 감정들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동안 첫째 우위였던 집안의 기운, 무게 중심도 조금은 둘째에게로 옮겨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히 '둘째의 역습'라 할 만한 상황이다.


특히 둘째에게 밥을 먹일 때, 아내와 나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직 스스로 숟가락질을 잘하지 못해서 밥을 떠먹여 주는데, 숟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주기도 전에 둘째는 "아~!" 소리를 내며 입을 있는 힘껏 크게 벌린다.


그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폭소하게 된다. 요즘 둘째가 가장 밀고 있는 애교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받아먹으니 식사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루는 시간을 재봤는데, 한 끼 분량을 다 해치우는 데 넉넉잡아 15분이 충분했다.


순간 첫째 육아휴직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가 식탁에만 앉으면 지루해하 장난을 쳐서, 밥을 먹일 때마다 진땀을 뺐다. 식사 시간만 매번 1시간씩 걸리니 집안일 효율도 떨어졌다.


다섯 살이 된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어지간 해선 스스로 밥을 먹지 않는다. 어떻게든 밥을 먹도록 유도하거나, 마지못해 우리가 떠서 먹여주어야 한다. 그 마저도 단번에 삼키는 일이 없 최근 아내와 나의 식사시간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머금고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다. (나는 그나마 평소엔 저녁 한 끼를 같이 할 뿐이지만, 아내는 매일 아침부터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첫째 앞에서 계속 둘째 칭찬을 하게 된다.


"동생은 벌써 밥 다 먹었어!"

"동생이 밥 제일 잘 먹네~"


이런 말을 들은 첫째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입을 삐죽 내밀고 “엄마 아빠는 나를 안 사랑해”하며 남은 밥을 맛있게 먹지 않는다. 나는 또 아이 앞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누나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밥 한 공기를 깨끗이 비운 둘째는 꺄르르 웃으며 거실을 활보한다. 어떤 때는 혼자서도 잘 노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또 한 번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둘째는 사랑'이라고들 하는지 알 것 같은 요즘이다.




'둘째의 애교에 정신이 팔려 첫째를 미워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첫째에게도 지금의 둘째와 같이 마냥 예쁘고 귀여워서 우리가 눈을 떼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지금도 첫째가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자기가 누나라며 동생도 잘 돌봐주고, 우리가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옆에 와서 도와주기도 한다. 그럴 땐 참 기특하다.


그럼에도 첫째보다 둘째가  예뻐 보이는 , 단지 두 아이가 각자 다른 성장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착시' 때문일 것이다.


첫째가 진짜 미워서라기 보다, 둘째가 무조건 예뻐서라기 보다, 둘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지금은 이렇다 하더라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땐, '첫째의 재역습'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착시에 빠지지 말 것.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말 것.


너무도 당연한 이 말들을, 나는 앞으로 아이 둘을 키우며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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