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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01. 2020

새해 첫날, 나는 미역국을 먹는다

나는 매년 1월 1일 아침, 미역국을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아침 일찍 미역국은 꼭 끓여 놓고 나가셨다. 결혼을 한 뒤로는 아내가 챙겨주고 있다. 1월 1일은 내 생일이.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가다 보면 으레 서로 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생일이 언제냐, 묻는 것이다. 그때 내 생일을 밝히면 열에 아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진짜냐고. 신기하다고. 1월 1일 생일인 사람 처음 본다면서.


그중에 몇몇은 이런 이야기도 한다. 1월 1일이 생일이라 좋겠다고. 그냥 큰 의미 없이 던진 말이겠지만 나는 그런 얘길 들으면 '음...? 좋... 좋나...?' 하고 그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1월 1일이 생일이어서, 정말 좋았던가.


좋은 점은 분명 있다. 생일이 특이하다 보니 친구들, 지인들이 잘 기억해주는 편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내 생일을 챙겨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을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가족과 함께 좀 더 특별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1월 1일 아침상엔 미역국과 더불어 항상 케이크가 등장하므로 신년 파티 분위기가 난다. 새해를 무조건 웃으며 시작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낳아주신 어머니께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내 생일이 1월 1일이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사실 '1월 1일'은 생일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특별한 날이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날, 그게 바로 생일이거늘. 온전히 '나의 날'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때가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카운트다운까지 해가며 반기는 1월 1일.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내 생일의 의미는 아무래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한 때 나는 이를 두고 "전 세계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어!"라며 정신승리를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끝 맛은 여전히 씁쓸하게 남았다.




나는 가끔 이렇게 내 생일을 두고, 그게 좋냐 아니냐에 대한 철없는 생각들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엔 내 생일의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부모 경력이 곧 5년 차로 접어들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지난달 둘째 돌잔치를 치르면서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회상하다가 문득, 나는 어머니 생각을 했다.


'아이고... 그러고 보니 울 엄니는 나 낳는다고 새해 첫날부터 고생하셨겠구나.'

'30여 년 전 1월 1일은, 어머니에겐 어떻게 지나갔을지도 모를, 그런 날이었겠구나. 새해고 뭐고 없었겠구나.'


실제로 그랬던 듯했다. 지난겨울, 둘째를 낳고 아내와 한창 몸고생 마음고생하고 있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내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출산 당시 두 살 터울인 나의 형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이웃집에 맡기고 병원으로 가느라 고생깨나 하셨다는 얘기였다.


가족, 친척도 아니고 그리 가깝게 지내던 이웃도 아니었다는데, 첫째 아이를 그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어머니는 얼마나 죄송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셨을까.


나는 이제 그 심정을 안다. 우리 부부가 둘째를 맞이할 때는 감사하게도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첫째를 돌봐주셨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첫째에게 드는 미안한 마음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것 하나만 놓고 보아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거기에 여러 상황들이 겹치면 그야말로 '멘붕'이 온다. 특히나 한창 돌봐주어야 할 첫째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나 또한 그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태어났음을, 이제야 진심으로 깨닫는다. 아내와 내가 서른이 넘어서야 겪고 있는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나의 어머니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감당해야 했음을 깨닫는다.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데에는, 나를 낳은 뒤 미역국을 드시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 둘을 갖고 나서야 비로소 내 생일을, 어머니의 입장에서 바라보 되었다.




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처음 집으로 가던 날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2020년 그날에도 눈이 올까.


날씨야 어찌 됐든 나는 이번에도 아내가 정성 들여 차려준 미역국을 먹으며, 새해 첫날로서가 아닌 내 생일로서의 '1월 1일'을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다. 30여 년 전 그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2020년 새해 첫끼 아내표 미역국


새해와 함께 생일을 맞은
모든 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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