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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24. 2019

동생 돌잔치 영상을 본 첫째의 반응

돌잔치 기념 성장 영상 제작 후기 (2)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그래도 남겨보고 싶은 돌잔치 영상 제작 후기 두 번째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brunch.co.kr/@heopd/121


1. 어떻게 만들 것인가


둘째 아이의 성장 영상을 만들면서 특별히 고민했던 포인트는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영상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해서 만들 예정이었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둘째, 두 번째 부분에서는 아내와 첫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략 이런 구성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시간도 부족한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욕심이 났다. 돌잔치의 주인공은 당연히 둘째이지만, 둘째가 이렇게 잘 클 수 있게 해 준 두 사람의 이야기도 영상에 꼭 넣고 싶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만들 것인가'였다.


성장 영상은 보통 사진과 동영상, 음악, 그리고 자막이 어우러져 완성이 된다. 그런데 영상을 그렇게 만들어 버리면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첫째는 영상을 보더라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다. 읽고 쓰는 것 빼고는 언어능력이 제법인 첫째인데, 영상을 본 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첫째가 조금이라도 더 영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부모님들께서 영상을 보며 느낄 감정을 첫째도 함께 공유할 수 있길 바랐다. '형식'에 대한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고민이라고 해봤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었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첫째도 볼 수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단연 내레이션. 그 외에 방법은 없었다. 단,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제작 기간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 구성에 대한 고민을 끝내고 편집을 슬슬 시작했을 땐 이미 돌잔치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한 컷 한 컷 영상을 붙이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는데, 거기에 입힐 멘트까지 생각하려니 막막했다.


둘째, 내 몸뚱이가 사상 최악의 컨디션이었다는 것. 올 겨울은 유난히 감기에 자주 걸렸다. 특히 돌잔치 직전에는 꽤 독한 감기가 걸려 있었는데, 코가 막히고 목소리도 완전 잠겨 버렸다. 아무리 멘트를 멋들어지게 잘 쓴다 한들, 그걸 소화해내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었다.


결국 나는 위 두 가지 이유(핑계)로 내레이션 작업을 포기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좀 남아서 영상 오프닝 부분에 내 목소리를 넣어봤는데, 역시나. 뒷부분 영상에 내레이션을 더 추가하지 않은 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목소리는 '내 목소리'임이 분명하다.)


2. 동생 돌잔치 영상을 본 첫째의 반응


아쉬운 대로 작업을 마무리하고 돌잔치 당일, 가족들 앞에서 조촐하게 상영을 했다. 빔 프로젝터에 노트북을 연결해 영상을 재생하고 나는 잽싸게 가장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영상을 보면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가족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창피하니까...?) 편집하면서 수 없이 많이 돌려본 영상이었지만 다시 보면 또 코 끝이 찡해올 게 분명했다. 가끔은 정말 난감하다 싶을 정도로 나는 눈물이 많다.


둘째, 영상을 보는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특히 내가 영상을 만드는 동안 미리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왔던 아내와, 자막을 읽지 못하는 첫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나에겐 관전 포인트였다. 그 두 사람은 영상 후반부의 주인공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아내와 첫째는 자리에 앉지 않고 앞쪽에 서서 차분히 영상을 지켜봤다. 특별히 재미난 장면은 없는 영상이라 그랬는지 둘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이번엔 흥행 실패구나' 생각하는 사이 영상이 끝났 몇 초간 묘한 침묵이 흘렀다.


(이럴 줄 알고 마지막에 당부의 말씀을 써놨건만...)

하지만 나는 곧 이 흥행 실패가 '참패'는 아님을 알게 된다. 어머니께서 눈물을 슬쩍 훔치셨고 아내의 눈시울도, 다시 보니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이어서 첫째의 반응도 다시 살폈는데 그때 보인 아이의 모습이 나에겐 의외의, 뭉클한 장면이었다. 첫째는 훌쩍 거리는 아내를 한번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곧 품에 들어가 폭 안겼다. 잔뜩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안아달라며 칭얼대는 것 같기도 했다.


첫째가 어떤 기분에서 그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두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 보였다. 영상과 음악만으로 아이에게 내 마음이 전달됐던 걸까. 신기한 경험이었다.


돌잔치 이후, 그날 저녁이었는지 다음날 저녁이었는지, 아무튼 그 영상 그대로 첫째에게 다시 보여줬던 적이 있다. 그때 첫째의 반응은 더욱 놀라웠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울음을 터뜨린 거였다. 왜 우냐고 물어도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왜 울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참고로 아내와 첫째가 등장하는 부분에 쓴 사진과 영상은 대부분 둘째가 태어난 직후에 찍은, 둘의 애틋함이 묻어나는 것들이었다.)


"응... 엄마랑 다시 저거 하고 싶어~"

"응? 저게 뭐야? 어떻게 하고 싶은데?"


영상을 함께 돌려보다 아이의 말에 맞춰 멈춘 부분에는, 산후조리원에서 잠시 외출 나온 아내와 첫째가 감격의 포옹을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출산한 병원에서 일주일, 산후조리원에서 2주. 엄마와의 이별이라는 힘든 시간 뒤에 경험했던 그 따뜻함이, 첫째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모양이다.


3. 좋은 기억이 더 크게 남을 수 있도록


만 3세 이전은 대부분 절차기억으로 훗날 아이가 회상하거나 상기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

유아기에는 자아 인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절차기억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자신을 돌봐주는 양육자와의 관계에 대한 기억, 상호작용 등이 몸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3세까지의 경험을 통해서 아이는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고 관계를 맺는 방법도 배우지요.  

- <베스트베이비> 칼럼 '아이 기억력 발달의 비밀' 중

http://naver.me/xCqHxztN


동생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그냥 그럴 때가 되어서인지 첫째의 고집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아이를 혼내는 일도 많아졌다.


주의를   줘야겠지만 동시에 그만큼, 아니 그것보다  많이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떨어져 지냈던 기간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아이가 결국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엄마와의 포옹이듯이, 앞으로도 행복한 기억들이 아이에게 더 크게 남았으면 좋겠다.

2018년 12월 어느 날


* 성장 영상 배경음악으로 쓰면 좋을 


(1) 엄마가 딸에게 - 양희은

https://youtu.be/8rWuQI9ljsY


(2) Beautiful - Carly Rae Jepsen (feat. Justin Bieber)

https://youtu.be/KTx-uNAZ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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