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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07. 2019

성장 영상 제작이 어려운 두 가지 이유

돌잔치 기념 성장 영상 제작 후기 (1)

지난 주말, 둘째의 돌잔치가 있었다. ‘잔치’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대규모 행사는 아니었다. 부모님들만 모시고 한 조촐한 식사자리에 가까웠다. 그래도 둘째의 돌을 기념하는 자리이니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정장, 드레스, 한복 등의 옷을 갖춰 입었다. 돌상도 빠질 수 없었다.


돌잔치 준비는 아내가 거의 다 했다. 우리와 부모님 스케줄에 맞는 장소를 선정하고, 돌상 및 의상 대여 업체를 알아보고, 둘째 입힐 한복을 구입하기 위해 광장시장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정해야 하는 것마다 선택의 폭이 넓고, 또 이것저것 따져볼 게 많으니 아내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했다.




돌잔치를 앞두고 온전히 나 혼자 맡아 준비해야 했던 건 단 하나. 바로 가족들에게 보여줄 아이의 성장 영상이었다.


혹시 'PD니까 영상 하나쯤이야 뚝딱 하면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계신가? 다른 피디님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전혀.


나도 처음엔 쉬울 줄 알았다. 그런데 2년 전 첫째의 성장 영상을 만들다 돌잔치 전날 밤까지 꼴딱 새우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피디건 뭐건 간에, 절대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란 걸 말이다.


성장 영상 제작의 어려움 1
- 방대한 촬영 분량


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먼저, 촬영 분량이 방대하다는 점이었다.


성장 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단연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이다. 그런데 이게, 어마어마하게 많다.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에 이른다. 스마트폰에 카메라가 달려 있으니 아이가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편하게, 또 많이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영상을 만들기에 앞서 어떤 사진과 동영상이 찍혀 있는지 일일이 다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야 성장 영상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가 보일 것 같았다. 좀 띄엄띄엄 봐도 충분했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다.


피디들이 편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로 촬영본 프리뷰다. 제일 좋은 컷을 쓰기 위해서는 촬영본 전체를 반드시 봐야 한다. 대충 쓱 훑어보고 영상을 골라도, 적당히 그럴싸하게 편집을 해내면 알아챌 사람도 없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그러면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다. 어딘가에 분명 이것보다는 더 나은 컷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걸 쓰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가지고 있는 영상 소스를 보고 또 본다.


성장 영을 만들기에 앞서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모두 확인하는 데만 해도 2, 3일이 걸렸다. 그중에서 쓸만한 것들을 고르고 편집하는 데 또 2, 3일. 일주일에 달하는 시간을 성장 영상 제작에 매달려야 했다.


성장 영상 제작의 어려움 2
- 능력의 한계


장 영상을 만들며 느꼈던 어려움, 그 두 번째는 능력 부족이었다.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피디라는 직업이 사실 그렇다. 피디가 실제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 '직접' 손을 대는 건 영상 편집 정도다. 그 외의 작업들은 작가, 카메라 감독, CG 감독, 음악 감독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힘을 빌려 제작을 해나간다.


물론 요즘은 콘텐츠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피디의 역할도 제각각이다. 내가 말한 것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 CG 작업까지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나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프로그램 제작을 해왔기 때문에, 그럴듯한 영상을 내 힘만으로 온전히 만들어 내는 게 어렵고 불가능에 가깝다. 촬영 편집은 어떻게든 한다고 쳐도, 특히 CG 작업은 내가 직접 하면 너무 없어 보일 것 같았다. 손수 만든 성장 영상이고, 또 가족들끼리만 본다는 걸 감안하면 좀 서툴러도 괜찮은데 괜한 욕심만 자꾸 생겼다.


요즘은 아이들 성장 영상을 쉽게 만들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많다고 하는데, 그런 데는 또 손이 가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랄까. 피디의, 아니 나의 영상 제작 실력이라는 게 별 거 없다는 걸 나 스스로는 알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보이고 싶진 않았던 거다.


우여곡절 끝에 영상을 완성하고 보니 어느덧 돌잔치불과 9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마감이 임박해서야 최종 결과물을 뱉어내는 건 원래 성격일까, 일하면서 굳어진 습관일까. 가끔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도 첫째 때는 밤을 완전히 꼴딱 새웠었는데, 이번엔 세 시간이라도 잤으니 비교적 여유 있게 끝낸 셈이었다...고 얘기하면 아내는 또 한숨을 푹 내쉬겠지.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조금이라도 더 잘 만들기 위해 밤을 새울 수도 있었다. 보면 볼수록 아쉬운 점이 보이는 게 영상인지라. 하지만 첫째 돌잔치 때 하루 종일 비몽사몽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마무리하고 자는 편을 택했다. 훗날 둘째가 본인 영상이 성의가 없다며 투정을 부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힘들지만 이렇게 가족들사진과 동영상으로 뭔가 하나 만들어 놓으면 뿌듯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굳이 돌잔치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 편씩 정도는 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수천 개에 이르는 사진, 동영상 파일을 정리하는 계기도 되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첫째 돌잔치 직후에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영상을 만들기 전까지는 추가로 제작한 것이 없으니, 생각만으로 그쳤던 모양이다. 잘 구성된 영상 하나를 만든다는 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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