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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l 17. 2019

'독박육아'는 누구의 책임인가

둘째 아이가 벌써 8개월차로 접어들었다. 아내의 육아휴직도 절반이 지나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의 복직이 다가온다는 건 내가 육아휴직을 준비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회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지만 회사에 "육아휴직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남자로서 여전히 편치 않은 일이다. 두 번째이기도 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아빠의 육아휴직 선언. 언제쯤 맘 편히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서랍에 묵혀뒀던 글 한편을 조심스레 공개해 본다.




나는 독박육아라는 말이 싫었다.


'독박'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혼자 모두 뒤집어쓰거나 감당함


그래서 독박육아라 함은 일반적으로 아내 혼자 육아라는 짐을 뒤집어쓰고 있음을 의미한다. 뒤집어쓴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그걸 뒤집어씌운 쪽이 있기 마련.


아내에게 독박육아를 뒤집어씌운 쪽은 그럼 누구인가? 남편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남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니까 아내들이 육아 독박을 쓰는 거라고.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시선이 매우 불편했다.  


2018년 12월, SBS스페셜에서는 <아이 낳을까, 말까?>편을 방송했다. 방송에 보면 육아를 함께 하지 않는 남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남편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면 둘째까지 낳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라 말하는 한 아내의 인터뷰도 담아냈다.


그런데 방송을 모두 보고 나서,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 아내의 독박육아에 대한 책임이 다 남편에게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지,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저출산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라고 말하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사회적인 혼란이 올 거라고 예측하면서, 왜 그 원인을 개별 가정에서 찾고 있는 걸까. 왜 개인에게만 변하라고 요구하는 걸까. 그보다 먼저 변해야 할 건 우리 사회의 시스템 아닐까?


방송에 사례로 나온 아빠들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독박육아의 주범'으로 몰리곤 하는 남자들에게, 일단 기회나 주고 비판을 하더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나라의 제도 아래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먼저 여자가 육아를 주도하게 된다. 남자는 출발부터 육아에서 멀어지게 되어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자 직원의 배우자 출산으로 인한 휴가는 고작 5일이었다, 5일. 그마저도 이틀은 무급이었다.


5일 동안 뭘 할 수 있을까? 앞뒤 주말 붙여봐야 9일인데 출산하느라 지친 아내를 돌보다 보면 정말 금방 지나간다. 그 이후엔 정상 출근이다. 물론 퇴근하자마자 육아에 가담하면 되지만, 도움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배우자 출산 휴가 5일. 그리고 이어지는 정상 출근.


아내에 이어 바로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더라도 많은 직장인 남성들이, 배우자 출산 후 1년 동안을 9 to 6 근무를 한다. 거기다 야근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또 얼마나 많은가. 어떻게 하든 출산 직후 육아의 주도권은 아내가 지게 되는 환경이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육아하지 않는 남자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모든 걸 잘못된 제도 탓으로 돌리려는 것도 아니다. 개인 탓'만' 하는 목소리에 대한 비판이다.


2019년부터는 배우자 출산 휴가가 10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그것도 전체 유급으로. 반가운 소식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이걸로는 남자들이 육아를 대하는 태도에 드라마틱한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극과 극의 비교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대목에서 아빠들의 육아가 활발하다고 알려진 북유럽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가 지금 당장 그들처럼 될 수는 없어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시스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은 '휴가 할당제'로 그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 노르웨이는 아빠에게 육아휴직 기간 10주를 강제 할당하고 있고, 스웨덴은 부모에게 공동 유급휴가 480일을 부여, 이 가운데 90일은 부모가 각각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할당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나라의 제도보다 더 유용할 수 있다. 아이에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시기는 출산 직후 1년인데, 우리나라 제도 하에서는 아빠들이 이 기간에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배우자 출산휴가'가 아빠에게 주어진 휴가의 전부다. 아이 1명 당 최대 1년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다. 의무가 아닌 것을 굳이 기업이 직원에게 사용하라고 독려할 필요가 있을까. 직원 1명이 자리를 비우게 됐을 때의 뒷감당은 기업의 몫으로 남는 것인데 말이다.


그보다 북유럽과 같이 아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강제 유급 휴가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가장 힘든 육아 초기 단계에서부터 아빠들도 존재감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기사)

이것은 과연 우리나라에는 적용하기 힘든,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 걸까?


백번 양보 해서. 자, 그럼. 일단 있는 제도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하자. 그래야 변할 수 있다. 그래야 '독박육아'니 '저출산'이니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17년 우리나라 남자 육아휴직 사용자의 비율은 10% 정도였다고 한다. 육아휴직 사용자 10명 중 1명 만이 남자라는 얘기다.


이걸 두고 '용기 있게' 쓰지 못하는 남자들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되묻고 싶다. 그게 왜 남자들 문제인가. 있는 제도 안에서 휴직을 하는 데 '용기'를 이야기하는 현실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인가.


4, 50대, 즉 현재 직장에서 관리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육아휴직이란 건 꿈도 꾸지 못했을 세상에 살았다. 그러니 육아휴직 쓰겠다는 남자 직원이 못마땅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들 뿐만 아니다. '굳이 육아휴직을 써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젊은 남자들도, 아직 있을 수 있다.


그들을 위해 필요하다. 뭐가? 아빠 육아휴직의 의무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눈치'라는 걸 완전히 없애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강제로 쓰게 하는 것.


각 세대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만큼 사고방식에 차이가 있을진대, 의무가 아닌 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제도의 변화 없이, 육아휴직을 차마 못 쓴 지금의 2, 30대 젊은 남자들이 20년이 지나 관리자의 위치로 올라가면, 슬픈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나도 육아휴직 못썼어. 그런데 어떻게든 다 키우게 돼."라는 말이나 하면서, 아랫 직원이 눈치를 보다 결국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게 할 것이다.


지금 막 아빠가 된 세대가 모두 육아휴직을 경험해봐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 세대에게도 '아빠의 육아휴직'이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다.


2. 아직도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아빠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아내에 이어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고, 아내가 복직한다고 해보자. 상황이 완전 뒤바뀐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간에 아내가 겪었을 고충을 남편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했을 때, 집안일 대부분은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을 표한 적, 없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밤 9~10시,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리는 아내를 깨워 "설거지 좀 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다음날 아침, "어제 일찍 잤으니 아침밥은 자기가 좀 준비해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난 1년간 내가 못했던 게 있는데...'하면서 빚 갚는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육아와 집안일을 하게 된다.


반대로, 복직한 아내도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얼마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인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어 살아보는 것.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육아휴직이라는 제도의 존재 의미는 충분하다.




우리나라 남편들이 육아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데에 당연히 동의한다. 하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가 저출산을 극복하는 해결책이다."라는 단순한 메시지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사회적 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분명 한계가 있을 거다. 몇몇 가정의 환경을 바꿀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전체를 바꿀 순 없다. 만약 개개인이 변해서 대한민국 전체에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지기만을 원한다면, 그건 너무 무책임한 생각 아닐까.


인식은 여전히 구시대적이고, 제도는 미흡한데 개인의 변화를 이끌어 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건 국가로서, 그러면 안 된다고 본다. 언론도 그런 남편들의 모습만을 부각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 더 시급히 보완해야 할 제도적 문제는 없는지를 더 비중있게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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