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Mar 04. 2020

2020년의 첫 독서

<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만>

새해가 되면 독서 목표를 세운다. 2019년1년 동안 마흔 권을 읽어보겠노라 다짐을 했었다. 아쉽게도, 실패했다.


마흔 권이라는 숫자는 2018년의 독서량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당시는 첫 번째 육아휴직을 뒤로하고 복직을 한 였다. 직장을 벗어나 콧바람 좀 쐬고 난 다음이라 그랬는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의욕이 넘쳐다.


그 에너지는 가장 먼저 독서로 표출됐다. 그전까지 나는 책을 멀리하던 사람이었다. 1년 독서량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책을 읽다니. 스스로도 참 낯설었다.


책은 대부분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었다. 집에서 직장까지 왕복 2시간 거리인 데다, 서울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지하철에서 앉을 수가 있었다.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한 시기였다. 범접할 수 없는 속독과 다독을 하는 분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숫자이지만, 2018년에 나는 서른 권의 책을 읽었다.


2019년이 되었을 때, 기세를 몰아 독서량을 좀 더 늘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년도 독서량보다 권 많은 ‘마흔 권’이라는 목표가 나왔던 것이다.


분에 넘치는 과욕이었던 건지 아니면 어딘가 게으른 구석이 있었던 건지, 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래도 2018년보다는 많은 서른네 권을 읽었.)


2020년 목표는 보수적으로 잡았다. 1년에 서른다섯 권. 2019년 독서량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무리하지 말자’라는 마음으로 설정한 목표이긴 한데, 그럼에도 올해는 좀 자신감이 떨어진다. 바로 육아휴직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가장 많이 읽을 수 있었던 시간과 장소는 ‘출퇴근 지하철’이었다. 그런데 이제 육아휴직을 했으니, 적당한 소음에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없어진 셈이다.


올해 내가 목표했던 독서량을 달성할 수 있지는, 육아휴직으로 달라진 생활 패턴에서 독서를 위한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찾아내느냐에 달렸다. 출근하지 않은 지 벌써 3주째가 되었는데, 아직 좋은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자유로운 것이 아이들이 잠드는 인데, 그중 낮잠 시간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라기보다 ‘아이가 잠에서 깬 이후를 준비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다 함께 잠들어버리기 일쑤다.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또 익숙지 않아서 잘 안 된다.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선 달라진 생활 패턴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자면, 올해도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벌써 3월로 접어들었는데 딱 한 권 읽었다. 이 속도로 가다가는 (두 달에 한 권이니) 6권 정도 읽고 공치게 생겼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그 한 권도 못 읽을 뻔했다. 해가 바뀌고 나서 ‘이제 곧 육아휴직을 할 거다’라는 생각에 설렜던 건지 싱숭생숭했던 건지, 아무튼 마음이 좀 어수선해서 영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운명처럼(?!) 접했던 것이 브런치 작가 ‘고무라면’님의 출간 소식이었다. 평소 그의 브런치 연재 글을 재미있게 봐왔기 때문에, 책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너무나 궁금했다.


독서 권태기에 빠져있던 나에게 고무라면의 첫 책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전체적인 분위기를 딱 잡아주는 것이 기대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나의 독서 실적 부진을 딛고 빨리 책을 읽으라는 채찍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 내용이야 명불허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B급 감성 유머감각의 소유자 고무라면이 아니던가. 기존 브런치 발행 글을 통해 접했던 글들도 있어서 읽기 쉬웠고, 또 재미있었다.


한편으론, 부러움에 치가 떨다. 우리 부부가 충분히 누리지 못한 신혼생활을, 비록 주말부부이긴 하지만 3년이나 지속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달달한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다니! 책장 유독 잘 넘어갔 건 책을 빨리 덮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농담인 거 아시죠, 작가님?ㅎㅎ)

어쨌든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꽤 오랜 독서 권태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2020년 첫 독서를 웃으며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고무라면님께 감사드린다.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했던 고무라면의 에세이 <연하이고 남편이고 주부입니다만>. 이 책의 밝은 기운 내가 올 한 해 목표한 독서량을 채워 나가는 데 긍정적인 힘이 되어줄 것이.

매거진의 이전글 구독자 300명 감사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