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이후에 타 부서에 어떤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내용인즉슨, 내가 이직 준비를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다는 얘기였다. 궁금했다. 타 부서에 가깝게 알고 지내는 직원도 많지 않은데, 누구로부터 그 소문이 시작된 거였을까. 그나마 몇몇 친한 선후배들과 휴직 전 인사를 나눌 때에도 서로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추측해볼 수도 없었다.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고, 황당했고, 또 억울(?)했다. 직장 동료와 통화를 했을 때는 마침 두 아이 모두 집에서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전화기 너머로 들은 '이직'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육아휴직 기간 중에 이직을 시도할 생각이 전혀 없다.
휴직 도중 내가 이직을 해버리면 아이들은 누가 봐준단 말인가. 다른 휴직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육아휴직은 그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서 육아를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하지만 육아휴직 도중에 좋은 제안이 온다면 흔들릴지도 모른다. 나도 사람인데. '평생직장'이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인데. 혹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럼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겠다. 만약 아이들을 돌봐줄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육아휴직 기간 중이라도 이직할 수 있다는 얘긴가? 어차피 이직이란 건 개인의 자유니까, 나는 과연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여기에 대한 대답 또한 'No'다. 나는 육아휴직 기간 중에 이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아니 안 된다기보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려 해도 잘 그려지지 않았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 와"라며 응원해준 직장 상사들에게, 휴직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찾아가 "이직을 하게 됐습니다."라고 통보하는 일. 얼마나 면목 없는 일인가.
육아휴직은 당연한 권리이고 이직 또한 개인의 자유다. 그렇다 하더라도 '육아휴직 중 이직'은 나를 믿고 휴직을 승인해 준 회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남자 직원의 육아휴직 중 이직'이라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
누군가 육아휴직 중에 이직을 한 케이스가 있으면 이후 다른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려고 할 때, 회사에서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육아휴직하고 이직 준비하려는 거 아냐?" 하고 말이다.
남자 직원이 육아휴직을 하는 게 아직까지도 사회적으로 편치만은 않은 분위기인데, 나로 인해 더욱 위축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아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다음 웃으면서 복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회사는 육아휴직하겠다는 남자 직원을 무조건 신뢰하고, 남자 직원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내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 마지막으로 나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내신 분들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스럽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