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8개월 차로 접어드는 둘째.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도 잘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만, 좋고 싫음은 확실히 표현할 줄 안다.
특히 누군가에게 안길 때 상당한 호불호를 드러내는데, 어떨 땐 좀 민망할 정도다.
아내의 재택근무 기간이 끝나면서 둘째는 나와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졌다. 그래서일까. 둘째는 아내와 나, 둘 다 집에 있으면 좀체 아내에게 가는 법이 없다. 안아달라는 표현은 나에게만 한다.
그렇게 한참을 안아주다가 팔이 아파 "엄마한테 좀 가 있어" 하고 아내에게 넘기려 하면 둘째는 꼭 싫은 티를 낸다. 잔뜩 앙탈을 부리고 고개를 홱 돌려 내 품으로 더 파고든다.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승자의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둘째에게 항상 0순위인 것만은 아니다.
요즘 둘째는... ‘할아버지 껌딱지’다.
바로 옆동네에 거주하고 계시는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아이들을 보러 자주 들르신다. 이때 둘째의 반응이 늘 관전 포인트다.
두 분이 동시에 집으로 들어오시더라도 둘째는 할머니보다 할아버지에게 먼저 달려간다. 그리고는 꺄르르 웃으며 두 팔을 벌린다. 안아달라는 뜻이다.
함께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때에도 둘째는 할아버지를 찾는다. 온갖 투정을 부리며 밥을 먹지 않고 방황하다가도, 결국은 할아버지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린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것인지, 그때부터 밥을 잘 먹기 시작한다. “할아버지 식사하셔야 돼~” 하며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니, '껌딱지'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그런 둘째를 보면 궁금했다. 왜 유독 할아버지에게만 저럴까?
잘 놀아주셔서?
맛있는 걸 많이 주셔서?
둘째의 마음은 대체 뭘까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때는 지금의 둘째 못지 않은 '할아버지 껌딱지'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왜 그랬을까.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어머니는 자영업을 하셔서 늘 바쁘셨다. 그래서 나는 학교나 학원을 마치면 곧장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가곤 했다.
대문 앞에서 "할아버지!" 하고 부르면 할아버지는 항상 안쪽에서 “뉘귀야~” 하며 나를 맞아주셨다. 할아버지 특유의 억양과 웃음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할아버지 댁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별다른 장난감은 없었지만, 물건이 잔뜩 쌓여 있는 창고에서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웬만한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할아버지는 최고의 놀이친구였다. 할아버지와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문지방을 네트 삼아 함께 탁구를 치기도 했다. 그 기억은 유독 또렷하게 남아있는데, 아마도 내가 할아버지와 했던 놀이들 중 가장 좋아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할아버지에게 짓궂은 장난도 많이 쳤다. 특히 할아버지 등 뒤에 올라타 반쯤 벗겨진 할아버지 이마를 쓸어 올리며 노는 걸 좋아했다. 손바닥에 닿는 매끈매끈한 감촉을 즐겼다. 할아버지의 등 뒤로 느껴졌던 따스한 체온과 웃음소리 또한 내가 그런 장난을 계속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머리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부터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기거나 장난을 치지 않는다. 살가운 스킨십도, 대화도 줄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느꼈던 따뜻함과 정겨움만큼은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둘째가 유난히 할아버지에게 애착을 보이는 이유. 잠시 추억에 젖어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걸 궁금해하거나 알아내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좋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언제든 떠올릴 수 있는, 그래서 미소 지을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