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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n 30. 2020

누나랑 잘 지내고 있니?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1

아들. 처음으로 아빠가 편지를 쓴다. 한때는 너의 누나에게 편지를 쓰곤 했었는데, 누나가 말을 잘하게 되고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이제는 잘 쓰지 않게 되었어.


반면 20개월 차로 접어든 너는 "아~빠!"라는 말만 또렷이 할 뿐 아직 말을 하지 못해. 엄마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얼추 다 알아듣는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런데 단 하나, 여러 번 얘기해도 네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말이 하나 있어. 바로 "누나 좀 때리지 마."라는 말이야.


요즘 들어 너는 누나에게 철썩철썩, 손찌검을 하는 일이 많아졌어. 장난감을 두고 다툼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누나가 가만히 있을 때에도 다가와 손을 번쩍 들어 머리를 때리곤 해.


오늘 아침에만 해도 아빠가 너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지 모른다. 누나를 향해 장난감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는 아빠도 화를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지.


그럴 때마다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는 너를 보면 어찌나 얄미워 보이는지. 아빠도 너에게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호통을 치게 되는구나. 네가 누군가를 때리고 무언가를 던지는 행동을 할 때 조용히 타이르는 게 요즘 아빠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일이야.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은 누나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누나의 머리를 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누나와 다투는 일이 없진 않겠지?


만약 누나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다면, 그래서 누나가 너무 미워 보인다면 한 번쯤은 아빠 얘길 듣고 참아 보길 바래.


어릴 적 누나에게 아무리 손찌검을 해도, 누나는 너를 때리는 일이 없었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몇 차례 엄마와 아빠가 주의를 주자 어느 순간부턴 전혀 그러지 않았지. (가끔 너에게 빽빽 소리를 질러대긴 했지만 말이야.)


어느 날 너에게 맞고도 가만히 있는 누나를 보며, 엄마는 그 모습이 너무 딱해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어. 화가 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참고 있을지 아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었 거겠지.


또 누나는 너를 참 예뻐하고 잘 챙겨주어. 어린이집 등원할 때는 꼭 네가 앉아있는 유모차까지 다가와 볼에 뽀뽀하며 인사를 했고, 하원 후에 가곤 했던 놀이터에서는 친구들과 놀기보다 너를 돌보며 놀아주는 걸 좋아했단다. 누나의 친구들이 너와 노는 모습을 보고는 속상해서 울음을 터뜨린 날도 있었.


지금 네 옆에 있는 누나와 너무 다른 모습일까? 표현 방식은 다르겠지만 누나가 너를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도저히 아닌 것 같다면 이 글을 누나에게도 보여주도록 하자. (말도 안 된다며,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글을 지워버리려나.)


처음 쓰는 편지부터 너무 너를 가르치려 들었구나. 너희가 사이좋게 지내는 남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만큼 크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싸우지 말고,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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