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Aug 17. 2020

코로나19와 함께한 육아휴직 6개월을 돌아보다

거의 3주 만에 쓰는 글이다. 휴가 시즌이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글 쓸 겨를이 없었다(라고 핑계를 대본다).


오랜만에 글 한 편 써볼까 하고 달력을 보니 8월 17일.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딱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오늘만은 꼭 미루지 말고 글을 발행하라는 신의 계시인 것 같다.


내친김에 지난 6개월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휴직 전 마지막 출근했던 날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휴직 기간에는 시간참 더디게 흐른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다.


2017년 약 4개월 간의 육아휴직을 했을 때는 그 기간이 그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없었는데, 단 2개월이 주는 차이가 이렇게  것일까.


사실 이번 휴직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4개월 정도였더라도 더 길게 느껴졌을 것 같다.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강력한 변수가 있었고, 지금까지도 있기 때문다. 코로나19 얘기다.

나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던 2월 중순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첫째가 갑자기 어린이집에 갈 수 없게 됐는데 아내와 나 모두 출근해야 했다면 정말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감사한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아이들과 종일 집안에서 놀아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기약 없는 가정보육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스트레스였다. 끊임없이 뭔가를 요구하는 아이와, 그걸 다 들어줄 수 없는 부모는 계속해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한창 기세 등등하던 3, 4월이 정말 고비였는데 이때 장인 장모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정신이 어떻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힘든 기간이었다.


'이번 육아휴직은 망했다'는 생각에 한번 사로 잡히니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내가 올해 육아휴직을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않았지만, 아내와 그런 얘기를 자주 했었다. 휴직하면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여행을 가자고. 다음 겨울에는 아이들도 많이 컸을 테니 해외에도 한 번 나갈 수 있지 않겠냐고.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그 계획은 보기 좋게 무산됐다. 해외여행은커녕 집 앞 공원에도 마음 놓고 지 못하는 상황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니 감정의 화살이 괜히 가까운 가족들을 향했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감정 조절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내에게 짜증 내는 일이 많아졌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 싶어 대책을 강구했다. 그중 하나가 억지로라도 외출을 하는 거였다.


처음엔 아내의 권유가 있었다. 아내는 나의 짜증이 정점을 찍었던 어느 날 저녁,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고막이 찢어지기 직전까지 볼륨을 높여 음악을 들으며 무작정 걸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마구 지르는 것도, 심야영화를 보는 것도 코로나19 여파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비록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스트레스 해소가 확실히 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아침 시간을 활용해 산책을 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마스크를 쓴 채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30분이든 1시간이든 바깥공기를 쐬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퇴근한 아내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저녁 외출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쨌든 감정을 조절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나름의 방법을 알게 됐으니, 코로나 바이러스 고마워해야 하는 걸까.




코로나19는 남은 하반기에도 계속해서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50명 내외를 유지하던 일일 신규 확진자 수는 최근 며칠 사이 다시 세 자리 수로 폭증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운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남은 6개월도 참 길게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니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시작되는 부정적 감정들에게 더 이상 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건 없는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