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Jul 31. 2020

'조건 없는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라고 첫째가 몸소 보여주었다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연인 사이에서도 쓸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부모 자식 간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그걸 두고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이라 부른다.  


하지만 막상 부모가 되고 보니, 그 '조건 없는 사랑'이란 걸 하기가 참 쉽지가 않다. 내 자식이지만 왜 이렇게 미워 보일 때가 많은지. 직장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고된 순간 중 하나 아침에 첫째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할 때다. 아내는 일찌감치 출근하기 때문에 두 아이 밥을 먹이고 씻기고 옷 입히고, 데리고 나가는 것까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잠에서 덜 깬 상태라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상황. 무엇 하나 순조롭지 않다. 첫째는 밥을 앞에 놓고 초점을 잃은 눈을 하고 앉아 있고, 둘째는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컵을 들어 올려 바닥에 물을 쪼르르 쏟아버린다.


참고 참다가 나는 결국 언성을 높이고 짜증을 내고 잔소리를 하고 만다. 그게 오히려 역효과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엔 나도 도저히 통제 불능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 꾸역꾸역 아이들 나갈 준비를 돕는다. 뒤끝이란 게 없는 아이들은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내 앞에서 장난을 치는데, 도무지 받아 줄 기운이 나지 않는다. 첫째는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버리고 싶고, 둘째는 언제쯤 어린이집에서 입소하라고 연락이 오는 걸까 막막하기만 하다.


이렇다 보니 첫째 등원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데 성공한다 한들 마음이 편치 않다. 발걸음이 무겁다. 3, 4분 정도를 걸어 어린이집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도 기분은 여전히 꿀꿀하다. "아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아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것조차 힘이 든다.


가끔 "엄마, 나 사랑해?", "아빠, 나 사랑해?" 하고 묻는 첫째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사랑하지만, 유독 말을 듣지 않고 떼를 많이 썼던 날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해주지 않곤 했다. "엄마 아빠 말 안 들으면 안 사랑해!", "뭐 예쁜 짓을 해야 말이지!" 하며 아이에게 괜한 심통을 부리는 것이다.


조건 없 사랑야 하는데,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참으로 못난 부모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아이는 달랐다. 아무리 내가 모진 말을 했어도 어느새 옆에 다가와 교를 부렸고, 또 사랑한다고 말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애정표현이 훅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참 부모로서 면목이 없고 미안 감정이 든다. 그날도 그랬다.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첫째를 데리고 마지못해 놀이터에 함께 갔던 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힘이 들어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오늘은 얘가 뭘 가지고 왔나' 하며 무심코 어린이집 가방을 열었는데, 간단한 글이 쓰여 있는 동그란 카드 한 장이 보였다. 

글씨는 선생님의 것으로 보였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이 생각이 맞는 듯했다. 하루 중 기쁠 때가 언제인지 대화를 나눈 후 아이가 말한 것 그대로 선생님이 대신 써주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단 세 줄의 글은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이가 기쁘다고 표현한 순간내가 평소에 힘들고 귀찮다고 여기 것이기 때문이었다.


럴 때마다 나의 어두운 표정과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해졌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기쁘다고 얘기해줘서 고, 부끄럽고, 또 미안했다.


지독하게 말 안 듣는 철부지이지만, 때로는 그런 아이를 보고 어른인 내가 오히려 우게 된다. 어쩌면 '조건 없는 사랑'이란 것도,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며  먼저 보여주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지 않았다면 잊혀졌을 아이의 과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