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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18. 2021

아이와 함께 눈길을 걸으면 생기는 일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1월 초의 이야기다.


코로나 일일 확진자 수가 연일 1,000명 대를 기록해 아이들도 한 달이 넘도록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집콕 생활에 아이들은 별문제 없이 적응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마음이 투영되어서 아이들도 괜히 안쓰럽고 안 돼 보였다. 정작 아이들은 나름대로 재미있게 잘 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언제 이 상황이 나아질지 알 수가 없어 막막하고 답답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큰맘 먹고 집 근처 키즈카페 대관 예약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5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까지 시행 중이기 때문에 요즘 키즈카페는 대관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곳이 많다.


오랜만에 키즈카페에 가자고 하니 아이들도 신이 났다. 아무리 집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한들 장난감과 온갖 놀거리로 가득한 키즈카페에서만 하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키즈카페에 가기로 한 날을 하루 앞두고 폭설이 내린 거다. 키즈카페는 평소엔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아이들 둘을 혼자 데리고 눈길을 헤치며 갈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를 가지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동네에 있는 소규모 키즈카페에 주차장이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예약 취소를 하고 집에 있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아이들에게도 상황 설명을 했다. 말을 꺼내자마자 첫째가 입을 삐죽거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누구보다도 크게 실망한 건 나였다. 얼마 만에 계획한 외출이었는데, 이렇게 날씨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하늘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땅이 꺼진 것도 아닌데, 단지 눈이 좀 쌓였을 뿐인데 그냥 가자!’  


다음날 아침,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가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한 손으론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첫째의 손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다.


워낙 눈이 많이 오기도 했고, 아직 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생각했던 것보다 걸어가는 게 더 힘들었다. 유모차가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첫째가 미끄러져 넘어지지는 않을까.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럴수록 첫째를 잡은 오른손엔 힘이 더 들어갔다.


하지만 첫째는 뽀드득거리며 눈길을 걷는 게 마냥 좋았나 보다. 살금살금 걷던 첫째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렇게 손 잡고 걸으니까 좋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불끈 힘이 솟았다. 정말 마법과도 같았던 말 한마디였다. 비록 고생스럽지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막상 부딪혀 보면 별 것 아닌 일 때문에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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