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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22. 2018

커튼에 집착하는 아이

첫째 딸 낭콩이는 언제부턴가 '큰일'을 볼 때면 커튼 뒤에 숨는다. 물론 기저귀를 찬 상태에서.


벌써 부끄러운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가다 보니 종착지가 거기였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커튼 뒤에만 가면 쾌변을 하는 낭콩이다.

"응가 중. 접근 금지!"

처음엔 아이가 왜, 꼭 하루에 한두 번씩 커튼 뒤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엄마, 아빠. 응가 할래요~"라고 말이라도 하지만, 말을 잘 하지 못했을 때는 거실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아무 맥락 없이, 커튼 뒤로 들어가서는 한참을 서 있기만 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서 조심스레 다가가 커튼을 들추기라도 하면 몸을 한 바퀴 더 돌려 깊이 숨어버렸다.


그런데, 커튼 뒤에 있다가 나오면 어김없이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 반복되니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커튼 뒤'라는 장소를 '화장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기저귀를 떼기 위한 '배변훈련'을 하고 있는 요즘에도 낭콩이의 커튼 사랑은 여전하다.


이제 소변은 어느 정도 가릴 수 있게 되었지만,  '큰일'은 아직 변기에 앉아 성공한 사례가 없다. 커튼 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늑함 때문일까. 좀처럼 변기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주말에 외출을 하는 날이면, 낭콩이는 하루 종일 '큰일'을 보지 못한다. 공중화장실 변기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저귀를 차고 있더라도 묵묵부답. 그렇게 참고 또 참다가, 집에 돌아오면 커튼 뒤로 들어가 터뜨려버린다. 푸드득 푸드득.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아웃풋(?)이 나온다.


아이의 이런 '커튼 집착'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추석 연휴, 하루 시간을 내 에버랜드에 갔던 날이었다. 한참을 잘 놀다가, 잠시 쉬면서 배도 채울 겸 식당에 들러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낭콩이가 배를 움켜쥐는 게 아닌가. 뭔가 불길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배 아파요... 응가 할래요..."


그동안 외출했을 때는 그냥 참을 뿐, 이런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어지간히 급하구나 싶었다. 동시에, 평소 아이가 '커튼 뒤'가 아니면 일을 잘 보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걱정도 됐다. 억지로 참느라 아이가 스트레스받지는 않을지.


그런데, 이어지는 아이의 말을 듣고 더욱 난감해졌다.


"응가 할래요... 집에 가요... 집에 가서 할래요... 커튼 뒤에서..."


뭐...라고? 집에 가자고?


오죽 급하면 저런 소리를 하겠나 싶어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곳은 용인. 단지 '큰일'을 보러 1시간을 넘게 달려 집으로 갈 순 없었다. 에버랜드에 입장한 지도 고작 네 시간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공중화장실에서 일을 봐줄 것 같지 않은 모습의 낭콩이. 집에 가자고 슬슬 떼를 쓰기 시작했다. 대책이 필요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

'혹시, 어디든 커튼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서도 큰일을 볼 때면 어김없이 커튼 뒤로 들어가는 낭콩이었다. 즉, 굳이 우리집이 아니어도 아늑한 커튼만 있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에버랜드에 조용하고 커튼이 있는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봤다.


맞다. 수유실!


수유실은 조용한 데다, 커튼으로 공간 하나하나를 가릴 수 있게 돼 있는 게 일반적이다. 일단, 가까운 유아 휴게실로 향했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유아 휴게실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수유실로 직행했다. 다행히 커튼이 있었고 비어 있는 칸도 있었다.


그렇다고 과연 아이가 일을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바깥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엄마에게 나가 있으라고 한 뒤, 차고 있던 기저귀에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낭콩이. 작전 성공이었다.


이후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 아이와 함께 다시 놀이공원 이곳저곳을 누볐다. 에버랜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로스트밸리까지, 1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을 감수하며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그곳에 커튼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야심 차게 떠났던 가을소풍이 아쉬운 결말을 맞을 뻔했다. '응가'와 함께...




그 당시 수유실 다른 칸에 있었을 여러 엄마,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밥 먹는 곳에서 일을 해결 했으니... 비록 기저귀는 채웠지만 냄새까지는 어쩌지 못해 민폐를 끼쳤던 것 같다.


낭콩이는 언제쯤 커튼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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