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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Oct 15. 2018

"내가 할 거야!"라는 말에 대처하는 법

(feat. 미운 세 살)

아이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언어 능력까지 향상되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내가!"

"내가 할 거야! 내가 해볼래~!"


바꾸어 말하면, 고집이 세진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는 괜히, 느낌표를 붙이고 싶다.)


그러면, 아이는 더 이상 기어 다니기만 하던, 귀엽기만 하던 예전의 그 '아기'가 아니다. 분명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은데, 부모의 말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려 한다. 힘은 또 언제 이렇게 세진 건지... 그만큼 부모에겐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미운 세 살'이라 불리는 시기.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 우리 딸은 어땠는지,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해봤다. 다소 생뚱맞은 느낌의 물건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칫솔이다.

아이가 떼를 쓸 때마다 칫솔을 쥐어주며 달래줬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오히려 저 칫솔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이 더 많다. 하기 싫다, 내가 하겠다, 아빠 말고 엄마가 해달라, 고집을 부리는 통에 양치질해줄 때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매일같이 아이와 함께 한 양치 시간이, '미운 세 살' 아이의 전반적인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데 많은 밑거름이 돼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양치질할 때 아이의 의사 표현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큰 흐름이 있긴 했지만 그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양치 시간에 아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봤다. 그때그때 기록해두지 않아서 개월 수로 정확히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대략 다섯 단계로 나눠볼 수 있었다.


아이의 자율성 표현 5단계 

- 양치 시간을 중심으로


(제목을 써놓고 보니 뭔가, 전문적인 내용인 것 같은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임을 미리 밝혀둔다.)


1. 해주는 대로 가만히 있는다

초기 이유식을 먹이면서 양치를 막 시작한 단계. 이가 아예 나지 않았거나 앞니만 살짝 나와 있는 시기. 거즈에 물을 묻혀 잇몸을 마사지하듯 눌러주는 식으로 양치를 해준다. 사실 양치라기보다는 입안을 닦아준다는 느낌. 아이가 '엄마, 아빠' 소리도 잘 못할 때라 '싫다'는 의사 표현은 더더욱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양치질이 매우 수월한 때다.


2. 일단 거부하고 본다

이가 좀 더 나기 시작하면 손가락에 끼우는 실리콘 칫솔을 이용하는데, 아이는 좀처럼 입을 열어주지 않는다. 먹을 게 아니고서는 입 안에 뭔가가 들어오는 걸 상당히 싫어하는 눈치다.


얼마 있지도 않은 이가 썩지는 않을까, 부모는 노심초사. 너무 걱정될 때는 아내와 힘을 합쳐 아이의 입을 강제 개방(?)해서 칫솔질을 해주기도 했다. 아이는 대성통곡.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잘 구슬려서 칫솔 낀 손가락을 아이 입 안으로 가져가는 데 성공하더라도, 아이가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어버려서 양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3. 자기가 해보겠다고 한다

이때가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닐까 한다. 치아가 많이 나고, 이유식도 후기로 접어들어 양치질을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잘 하지도 못하면서 꼭 자기가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이 사이에 음식물이 낀 채로 남게 되고 입냄새도 날 텐데, 부모는 걱정이 된다. 그래서 양치질할 때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더군다나, 이 때는 유아 칫솔과 함께 불소가 들어있지 않은 유아용 치약을 함께 쓰게 되는데, 이게 또 문제다. 치약에서 달달한 맛이 느껴지니, 아이는 치약 묻은 칫솔을 쪽쪽 빨기만 한다. 칫솔질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걸 보면 부모는 또 속이 터진다. 아무리 불소가 없다 하더라도 아이가 치약을 마음껏 삼키도록 놔두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아빠가 해주겠다고 칫솔을 빼앗으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슬슬 말도 잘 하게 되는 시기라 의사 표현도 확실하다. 힘도 많이 세져서 통제는 더욱 힘들어진다. 양치 한번 시키기 정말 힘들다.


그러다 보니 부모도 이성을 잃기 쉽다. 나도 몇 번 욱해서 아이를 다그치거나, 아이가 팔을 움직일 수 없게 잡아둔 뒤 억지로 양치를 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 다음날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부모 입장에서는 좀 속이 터지더라도 기다려주는 게 좋은 것 같다.


계속 치약을 삼키는 게 신경 쓰일 수 있지만,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양 조절을 해주면서 지켜본다. 그러면 칫솔을 아이 손에서 다시 가져오더라도 아이가 더 이상 떼쓰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기는 실컷 했다 이거지. 아이가 그렇게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시기.


4. 아빠 양치도 자기가 해주겠다고 한다

이전 단계에서 나는, 아이가 칫솔질하는 걸 지켜보면서 칭찬도 많이 해줬다. "아이고~ 우리 낭콩이는 양치도 혼자 잘 하네~"라면서. 사실은 흉내만 내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래서인가. 어느 날 아이가 "아빠 양치도 내가 해줄게~"라며, 내가 입에 물고 있던 칫솔을 잡더니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 해봐. 이~ 해봐." 평소에 내가 아이 양치를 해줄 때 했던 말과 행동 그대로였다. 그리고선 세상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양치질도 아이에게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5. 양치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준다

이제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긴다. 아이가 먼저 양치질을 직접 하고, 부모는 기다렸다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개입한다. "이제 아빠가 검사할까~?"하고 물어본다. 한 번에 칫솔을 내어주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순순히 넘겨준다. 때로는 "아빠가 검사해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검사'를 하다 보면 아이가 칫솔을 다시 확 빼앗아 가는 경우가 있다. "뭐야, 아빠한테 해달라며. 왜 뺏어가~"라고 말하려는 찰나. 어린이집에서 배워왔는지 능숙한 손놀림으로 칫솔질을 한 후,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요렇게 요렇게 하는 거야~." 제대로 해달라는 거다.


이제 나를 가르치려 들다니. 양치질에 어지간히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양치질을 예로 들었지만,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 거의 모든 행동에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정말, 뭐든지 다 자기 손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기인가 보다.

이러한 '자율성'의 발달은 만 2세가 지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 중 하나라고 한다. 이때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고 통제하면 아이의 자율성이 꺾일 수 있다고 하니, 걱정되거나 답답하더라도 아이의 행동을 존중하고 지지해주면 좋을 것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딱 한 템포만 기다려보자. 그런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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