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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Nov 21. 2018

아이의 습관은 집안 환경에서 온다


신생아 육아의 필수품 중 하나인 공갈젖꼭지. 노리개젖꼭지, 꼭지, 쪽쪽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사실 이건 '필수품'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물건이다. 한 번이라도 써보면 알게 된다. 공갈젖꼭지는 '마법'이라는 것을.


갓 태어난 아이들은 무언가를 입에 넣고 빨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뭐든 손에 잡히면 입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곤란한 상황도 많이 생긴다. 신생아 때는 사리분별이 잘 되지 않으니, 먹으면 안 되는 물건들도 마구 입에 집어넣는다. 장난감이라든지, 볼펜이라든지. (모래라든지... 응?)


부모는 아이가 이상한 걸 입에 넣었다가 다치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한다. 이때, 공갈젖꼭지가 아이의 욕구를 안전하게 충족시키는 대안이 되어준다. 욕구 충족을 넘어 전반적인 심리적 안정을 돕는다. 도무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도 공갈젖꼭지만 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진다. 마법을 부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신기한 순간이다.


하지만 너무 자주 쓰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그 효과가 큰 만큼 아이가 공갈젖꼭지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딸아이도 공갈젖꼭지를 달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공갈젖꼭지에 보이는 애착이 지나치다는 걸 느꼈다. 대표적인 '집착 행동' 몇 가지만 적어보면 이렇다.


1. 눈만 뜨면 공갈젖꼭지를 찾아 입에 문다.

-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2. 공갈젖꼭지를 물어야만 잠을 잔다.

- 그전까지는 울기만 한다.


3. 밥 먹을 때에도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는다.

- 이건 특히, 아내가 부들부들했던 포인트였다. 밥 한 번 먹고 공갈젖꼭지 다시 물고, 또 다시 밥 한 번 먹고, 그러는 식이다. 입 안의 음식 때문에 공갈젖꼭지가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안 좋다.

'그거 좀 물면 어때' 하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공갈젖꼭지를 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실제 위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면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게다가, 공갈젖꼭지를 제때 떼지 못하면 구강구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라 더 신경이 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장 과정에서 아이에게 다른 관심사들이 생기면 공갈젖꼭지는 대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고 한다. 또 영구치가 나는 나이, 6세 이전에만 떼면 구강구조에도 문제 생길 건 없으니 너무 겁낼 것도 없단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09613&cid=48636&categoryId=48636


하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다.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가 걱정되기만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떻게든 공갈젖꼭지를 떼놓으리라 결심했다. 내가 막 육아휴직을 시작한, 작년 9월의 일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공갈젖꼭지와의 이별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허무했다. 울며 불며 떼를 쓰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공갈젖꼭지를 아이에게서 떼 놓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집안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 먼저 일어나서 아이 머리맡에, 또는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공갈젖꼭지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겼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와 반대로,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는 잠에서 깬 뒤 거짓말처럼, 언제 집착했었냐는 듯이 공갈젖꼭지를 찾지 않았다. 당시는 아이가 17개월 정도 됐을 때라 말로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손짓 발짓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던 아이였다. 충분히 '어서 공갈젖꼭지를 내놓아라!'라는 표현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예상외로 쉽게 일을 해결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이미 공갈젖꼭지를 뗄 준비가 돼 있었던 건 아닐까?', '공갈젖꼭지를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집안 환경이 아이에게 방해가 됐던 건 아닐까?'.


아이에게 생긴 어떤 '습관'은 부모의 행동이나 집안 환경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전의 아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하얀 도화지와 같은 아이들은 흡수력이 좋아 뭐든 잘 배우고 잘 따라 한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그런 사실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하루하루가 새로울 것 없이 비슷한 것만 같아 지루하고, 아이 때문에 지치는 일도 많다. '아이가 어떤 환경에 있어야 더 좋을까' 보다 '내가 어떤 환경에 있어야 덜 힘들까'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아이의 손이 쉽게 닿는 곳에 공갈젖꼭지를 준비해두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었던 것 같다.




계속 공갈젖꼭지의 예를 들었지만, 그게 무조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밝혀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공갈젖꼭지에는 분명 순기능이 있다. 때가 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끊게 되고,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전혀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것 외에도, 아이들이 평소에 노출되는 전반적인 집안 환경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한창 크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니까, 무엇이든 옆에서 잘 지켜봐 주면 좋을 것 같다. 적절히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 것들도 너무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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