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Nov 16. 2018

안아달라는 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날

딸에게 보내는 편지 #7

너는 두 번째 생일 이후로 부쩍 말을 잘 하게 되었어. 엄마 아빠와의 대화도 어느 정도 가능할 정도였단다.


지난주까지 네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빠 안아줘"였어. 아빠는 점점 무거워지는 너를 안는 것이 힘들었지만, 네가 품에 폭 안기는 그 느낌이 좋았지.

그래서 아빠는, 손목이 저려오고 어깨와 허리가 뻐근하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네가 안아달라고 할 때 거절하는 일이 거의 없었어.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갈 때, 주말에 엄마와 외출을 할 때, 네가 잠자리에 들 때, 이유 모를 투정, 어리광을 부릴 때.

"아빠 안아줘."라는 너의 말.

그런데 얼마 전, 그 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단다.


6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의 '작은 소동'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엄마 뱃속에 있는 너의 동생을 함께 보고 온 날이었어. 엄마는 평소 입덧 때문에 너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던지 키즈카페에 가자고 했단다.


마침 아빠도 너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어. 바로 전 주에 아빠가 혼자 너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다녀왔었는데, 2시간만 놀고 나오려니까 울면서 더 놀고 싶다고 한참 떼를 쓰는 거야. 그래서 그때, "다음 주에 또 오자~" 하고 너를 겨우 데리고 나온 일이 있었어.

어쨌든 너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던 엄마와, 너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아빠는 평소보다 긴 시간을 키즈카페에서 보냈어. 3시간 반 정도 네가 마음껏 놀 수 있도록 해줬지.


그런데 2시간이든 3시간 반이든, 너에게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제 갈 시간이야~"라는 아빠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는 게 지난번과 똑같았거든.


또 한 번 너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우는 너를 들춰 업고 나왔어.


그날 저녁, 엄마 아빠를 놀라게 했던 '큰 소동'


한바탕 작은 소동을 치른 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어. 너는 낮잠을 잤고 엄마 아빠는 한숨 돌리며 쉬고 있었지. 그러다 저녁때가 되어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외식을 하기로 했어. 입덧이 좀 괜찮아진 엄마가 오랜만에 양념 갈비를 먹고 싶다고 한 날이었지.


집 근처 고깃집 위치를 파악하고 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어. 차를 타고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던 터라 집에 있는 유모차는 딱히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어. 아파트 주차장까지만 네가 잘 걸어가 주길 바랄 뿐이었지.

그런데 너는 아파트 1층 문을 나서자마자 아빠에게 말했어.

"아빠 안아줘~ 안아줘~!"

아빠는 평소처럼 너를 그냥 안아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그날따라 유난히 아빠 몸이 힘들기도 했고, 네가 괜히 안아달라고 투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집에서 충분히 쉬다가 나오는 길이었으니까.

"아빠 어깨가 너무 아파~ 우리 주차장까지만 손잡고 걸어가자. 알았지?"

어르고 달래려 할수록 너는 점점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었어. 아빠 다리를 붙잡고 발까지 동동 구르며 안아달라고 계속 말했지.

그래도 아빠가 계속 거부하자 너는 "안 가! 안 갈 거야!" 하고 다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같이 저녁을 먹겠다고 가지고 나온 콩콩이 인형도 바닥에 던져버리면서 말이야.

"너 떼쓰면서 말하면 아무것도 안 들어줄 거야~ 그만~"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너는 급기야 바닥에 누워버렸어. 그리고는 아파트 단지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울었지.

아빠도 평소답지 않았지만, 너 또한 여느 때와 다르게 심하게 떼를 썼어. '폭발했다'라고 표현하면 좀 더 와 닿으려나. 네가 왜 우는지 알 길이 없었던 주변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엄마 아빠를 쳐다볼 뿐이었어.

그래도 아빠는 너를 쉽게 안아주지 않았단다. 말을 해서가 아닌, 울면서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는 행동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그렇게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었어.

울음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엄마가 나섰어. 너를 업고 달래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갔지. 네 울음도 그제야 잦아들기 시작했어. 그러는 동안 아빠는 끝까지 너를 안아주지 않았어.

아빠는 너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 하지만 네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면, 그걸 위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또한 꾹 참아볼 생각이야. 물론 그게 정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인지는, 아빠가 잘 판단 해봐야겠지?

아빠가 얼마나 잘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편지를 읽고 난 후 아빠에게 한 번 물어봐주렴. 네 기억이 닿는 시점부터 함께 얘기해보자꾸나.


2018. 6. 18.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