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Jun 04. 2020

아내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 하나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4개월 정도가 흘렀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아내에 대해 오해했던 게 하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아내가 원래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인 줄 알았다.




육아휴직을 하기 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 공기가 싸늘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첫째와 그걸 답답해하는 아내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거다. ‘다툼’이라는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퇴근 직후 가족들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한다는 건 분명 마음이 쓰이는 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가 아이들의 행동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말을 잘 들을 거란 기대를 하지 마.”라며 조언하곤 했다. 나에게 하는 말에서까지 짜증이 섞여있다고 느껴지면 “왜 나한테 짜증을 내?”란 말로 받아치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아내의 복직을, 나의 육아휴직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내와 첫째를 조금이라도 떨어뜨려 놓으면 서로 다투는 일이 줄어드니 지금 보단 집안 분위기가 나아질 거라 예상했던 거다. 게다가 나는 육아에 자신이 있었다. 이미 육아휴직 경험이 한 번 있는 데다, 다른 건 몰라도 감정 조절만큼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고, 오만이었음이 드러났다. 예정돼 있는 육아휴직 기간 중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면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부정적 기운을 담아 아이들에게 감정을 쏟아붓고 나면, 절제하지 못한 내 모습에 또 한 번 화가 난다.  


아내의 가벼운 농담 한 마디도 그냥 넘길 수 없을 정도로 어느새 내 마음은 짜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결국 내가 아내에게 했던 “왜 나한테 짜증을 내?”라는 말은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나에게로 돌아왔다.


하루는 분을 참을 수가 없어 애들이 왜 이렇게 밉상이냐고, 너무 짜증이 난다고 아내에게 토로했다. 아내는 이제야 내 마음을 알겠냐며, 이번 육아휴직을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며 위로했다.


맞다. 이제 다 이해가 된다. 아내가 왜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지, 왜 쉽게 짜증을 냈는지, 내가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출근한다고 하면 왜 한숨을 쉬었는지. 아내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문제는 아내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것이, 꼬여버린 내 감정을 풀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의 돌발 행동에도 어떻게 하면 평점심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혹은 화가 나더라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 앞에서 표출하지 않고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지, 그걸 알아내는 것이 이번 육아휴직의 최대 관건으로 떠올랐다.




얼마 전에 ‘육아휴직의 최대 난제는 요리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었는데, 이제 요리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요리는 내가 잘 못하더라도 어쨌든 다른 대안들이 있긴 하니까 말이다.


한때는 브런치에 육아와 관련한 글을 쓰는 게 신이 나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내 감정을 들여다 보는 일은 이쯤에서 잘 마무리 짓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데 다시 집중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섯 살 딸이 아빠의 시작을 응원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