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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21. 2019

육아의 최대 적은 '방심'

"아빠... 했어요..."

"응? 진짜??"

"네... 응가했어요..."

"아이고..."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을 맞아 모처럼 외출을 했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배 아픈 걸 참지 못하고, 카시트에 앉은 채로 일을 본 모양이었다.


뒤늦게 후회했다. 기저귀라도 챙길 걸...




지난 토요일, 첫째와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갔다. 요즘 그렇게나 핫하다는 <핑크퐁과 상어가족의 겨울나라>. 아이는 뮤지컬이 뭔진 잘 몰라도 '핑크퐁'이라고 하니 나가기 전부터 신이 난 것 같았다.


나도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공연 시각은 11시. 그렇게 이른 시각은 아니었지만 애매하게 갔다간 사람이 많아 고생할 게 뻔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야 주차도 여유 있게 하고, 사진도 좀 찍으면서 놀 수 있을 것이었다.


아이와 단 둘이 하는 외출은 처음이 아니었다. 뭐 특별히 챙길 게 있겠느냐며, 여유를 부렸다. 아이의 배변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 제법 대소변을 가릴 줄 알게 된 첫째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적어도 나에게 말은 할 수 있었다. 외출 가방에는 아이의 허기를 달랠 간식거리 몇 가지만 담았다.


그러다 아이 옷을 입혀주던 아내가 말했다.

"뮤지컬 한 시간 정도 한다는데 그냥 기저귀 채워줄까?"

"그냥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 한 번 갔다가지 뭐."

"아... 그래 그럼~"


한 시간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혹시 실수를 하더라도, 옷을 갈아입힐지언정 외출할 때 기저귀를 채우는 건 이제 아이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벌 옷만 한 벌 더 챙겨 공연장으로 갔다. 공연 시작 40분 전, 일찌감치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 전 공연장 주변도 둘러보고 아이와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다.


공연 시작 10분 전쯤, 아이가 말했다.


"아빠, 쉬 마려워요."

"그래? 그럼 아빠랑 화장실 갔다가 이제 뮤지컬 보러 들어가자~"


공연 전 화장실 가는 것까지, 계획대로 일이 진행됐다. 아이의 행동도 이젠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혼자 뿌듯해하며 아이 손을 잡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곧 시작된 뮤지컬은 예상치 못한 고퀄리티 공연이었다. '상어가족'의 인기가 '강남스타일' 이상이라더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도 신세계를 만난 듯 넋을 놓고 관람했다. 때로는 박수를 치고 춤도 추며 공연을 즐겼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기회만 있으면 자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뮤지컬이 끝나고, 행복감에 젖어 공연장을 나서는데 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빠, 배 아파요... 응가 마려워요..."

"배 많이 아파? 변기에서 한 번 해볼래?"

"싫어~ 기저귀~"


소변은 변기에서 하는 게 익숙해졌지만, 대변만은 아직 기저귀 해야 하는 첫째였다.


"아빠 기저귀 안 가져왔는데... 그럼 차 타고 빨리 집에 가서 할까?"

"응..."


공연장에서 집까지는 차로 10여 분 거리. 그 정도는 아이가 참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아무리 싫다고 했어도, 차에 타기 전에 화장실을 한 번 갔어야 했다.


배 아픔을 참지 못한 첫째는 결국 카시트에 앉은 채로 일을 보고 말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아이를 내려주려고 보니 카시트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이도 당황했는지 별 말이 없었다.


"아빠가 기저귀 챙겨왔어야 하는데... 미안해~"


엉거주춤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 손을 잡고 겨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또 2차 사고. 바닥에 뭔가가 고이는 것이 보였다. 아뿔싸...


다행히 가방에 물티슈가 있었다. 허겁지겁 바닥을 닦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아이를 씻기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응? 너 응가 안 했는데? 쉬만 한 거야?"

"응~ 응가 안 했어~"


큰일은 어떻게든 참아낸 모양이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공연이 끝나고 긴박했던 30여 분 간의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이와 생활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아직 두세 살 아기일 뿐이지만,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들이 생기고 그게 익숙해지면 '알아서 잘 하겠거니' 생각하게 된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방심하며, 소홀히 하게 된다.


물론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모든 실수를 예상하고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이가 당황하거나 상처 받지 않도록 차분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건 분명 부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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