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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14. 2019

신생아의 배꼽시계

모두가 잠든 새벽, 둘째가 우는 소리에 눈을 떠 시계를 보면 피곤하다는 것과는 별개로 드는 생각이 있다.


'거 참 신통하네...'


수유한 지 3시간이 지나면 알람이라도 맞춰 놓은 듯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깨운다. 물론 때때로 오차가 있긴 하지만 어떻게 먹을 때를 기가 막히게 알고 일어나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첫째도 신생아 때 그랬다는 걸 알고 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첫째 출산 직후에도 지금처럼 처가에서 생활하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당시는 회사 일이 많아 훨씬 바빴다는 것이었다.


늦게 퇴근하거나, 일찍 집에 오더라도 새벽까지 편집하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 나 혼자 방 하나를 따로 썼으니, 어느새 새벽 육아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어 있었다.


처가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회사 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야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기 볼 여력도 없이 잠자기 바빴다. 금세 곯아 떨어져서는, 아무리 옆에서 아이가 울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세상 모르고 자는 내가, 아내는 얼마나 얄미웠을까.  바로 옆에서 아이가 그렇게 울어대는데 잠이 오냐고, 나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지만, 당시 내 귀엔 아이 울음소리가 정말,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처가 댁에서 방 하나를 따로 쓴다. 첫째가 장모님, 장인어른과 한 방에서 자고, 둘째는 아내와 또 다른 방에서 잔다.


평일에 편하게 생활하는 대신, 주말 만큼은 내가 둘째와 함께 자겠다고 자처하고 나선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둘째를 나 혼자 봐야하는 상황이 주어지기도 한다. 장모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는 꼭 아내와 자야 직성이 풀리는 첫째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첫째가 신생아일 때는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이다. 아이 울음소리에 일어나 분유를 타고, 기저귀도 갈아준다. 그러다 아이가 시원하게 일(?)을 보거나 먹었던 분유를 게워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뒷처리 하느라 잔뜩 진땀을 빼기도 한다.


피곤하긴 해도, 마음은 편하다. 좀 더 노력해야겠지만, 한창 힘든 시기에 나도 적지 않게 힘을 보태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라고 써놓고 보니 아내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둘째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니, 육아에 여유도 생긴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몸으로 부딪히면서 직접 하는 만큼 알게 되고, 또 알게 된 만큼 더 잘 하게 된다. 육아도 그렇다.


아이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면, 그동안 육아에 소홀했다고 느낀다면, 자진해서 단 하루만이라도 '독박 육아'를 해보자. 갓 태어난 아이의 배꼽시계가 얼마나 정확한지도 한 번 느껴보자. 당장 몸은 힘들지 몰라도, 아내와 아이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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