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을 누르자 중환자실 입구의 인터폰에서 간호사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분 보호자시죠?”
“OOO환자입니다”
도어록이 딸깍 풀리는 동시에 육중한 유리문을 열고 좁은 복도를 한참 걸어 들어가니 중환자실이 나타났다. 병상에서 고개를 입구 쪽으로 젖힌 채 누워있던 아내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목으로 몇 개인지 모를 관을 삽입하고 있던 아내는 며칠간 먹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그런 상태로 누워있었다.
나는 아내를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보, 부디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잘 가. 그리고 당신은 OO에 있는 수목원에 가게 될 거야. 우리 가족들 모두 그 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했어. 나도 곧 따라갈게…”
아내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도 모두 좋은 배필 만나 짝 지어 주고 나도 곧 따라갈게. 좀 있다 우리 다시 만나”
아내는 더욱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페이션트 모니터(Patient Monitor)의 파장이 끊어졌다. 간호사가 달려와서 시간을 체크하고는 ‘10시 15분에 운명하셨습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소리는 듣고 계시니 계속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관부터 제거해 달라고 하고 아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두 해 전 그날은 3월의 마지막 날이자 부활절이었다. 그날 아내의 ‘병원살림’을 챙겨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벚꽃이 눈발처럼 날리고 있었다. 무심한 세월은 벌써 두 해가 흘러 또 3월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우울증-의학적 소견으로서의 우울증과는 다른 일상적 메랑콜리(melancolli)의 상태-을 얻었다. 툭하면 눈물이 먼저 쏟아진다.
오늘은 어느 인문학 교수가 노숙인들을 위한 강연을 열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커피와 역사’라는 주제의 이른바 ‘클레멘트 코스’ 강연이었는데 강의 후 어느 노숙인이
‘허기를 견디느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믹스커피를 50잔이나 마셨는데 건강에 괜찮을까요?’
라는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무심코 기사를 읽다가 또다시 발동하는 우울증을 참지 못하고 눈가를 적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