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룽

by 모노크롬

무슨 일인지 그가 운곡의 ‘애장골’에 들어와 살게 된 연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장골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아가 병으로 죽거나 혹은 사산(死産)한 아이들을 매장하고 돌무더기로 덮어둔 곳이어서 평소에도 괴기스런 기운이 감돌았다. 김두룽의 이미지는 애장골의 분위기와 결합하여 한층 음산했고 그런 느낌은 나 뿐 아니라 모두의 생각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김두룽은 그의 호칭이었지만 그것이 그의 실명인지,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지조차 아는 이가 없었다. 그는 행색으로만 보면 최소한 예순은 넘긴 노인처럼 보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에게 하대(下待)하고 있었다. 일 년 내내 걸치고 다니는 낡고 해어진 검은색 외투와 짙은 갈색의 벙거지 사이로 비집고 나온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산발이었으며 검은 얼굴과 손등엔 마치 식용유를 바른 듯 기름때가 번질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가촉의 천민’ 김두룽에게 비록 하대하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그의 정체에 대한 일말의 신비와 두려움이 혼재된 감정을 숨기며 살고 있었다.


그가 간혹 애장골에서 내려와 마을을 지나갈 때면 그의 손엔 손때가 까맣게 묻은 박달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었는데 지팡이 끝에는 구부러진 쇠가 박혀 있었다. 나는 그가 뱀을 잡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 지팡이는 틀림없이 뱀을 잡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그의 피부가 유난히 검고 번질거리는 것은 뱀을 잡아먹은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를 두고 가진 생각을 알고 있는지, 아니면 자격지심인지는 몰라도 김두룽은 마을길을 걸어갈 때면 항상 갓길로 다녔다. 김두룽의 이런 ‘통행 규칙’은 마을 사람들의 통행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몸을 낮추는 자격지심이거나 둘 중 한 가지였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그가 걷는 갓길의 반대편 가장자리를 택해 가급적 그와 거리를 두며 지나치곤 했다. 그리고 그를 지나 몇 걸음 멀어진 곳에서 황급히 뛰어 달아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마을 사람들을 해코지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나는 고향에 사는 동안 그가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은 커녕 목소리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간혹 ‘김두룽, 김두룽’ 하며 부를 때에도 그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들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무언가를 얘기하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알아들었다는 의사를 대신했으며 대부분 그런 정도로 소통의 과정은 끝나기 마련이었다. 나는 혹시 그에게 언어 기관의 장애나 청각 기능의 장애가 있는지를 의심해 본 적도 있었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미미하나마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청각의 기능은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두룽의 움막은 저녁의 어스름이 가장 일찍 드리워지는 서쪽 산 밑에 자리하고 있었고, 마을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가 나지막한 초가지붕 위로 자욱하게 피어오를 무렵이면 그의 움막 옆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도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그가 또 한 마리의 뱀을 잡아먹는 중이라는 추측의 시선으로 그의 움막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비록 추측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확신이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왜냐하면 여느 사람처럼 평상시에 일용하는 음식 재료를 조달하는 김두룽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시대에는 낡은 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던 걸인들도 심심찮게 보아왔지만, 김두룽이 구걸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쩌다 마을에 혼례 같은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김두룽은 잔칫집 대문간에 우두커니 서서 주인장이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잔치를 주관하는 아낙이 “김두룽 이리 오게” 하며 헛간 근처 외진 곳에 자리를 깔고, 김두룽이 갖고 온 넓적하고 쭈그러진 양은 냄비에 음식을 담아 주었다. 김두룽은 외투의 주머니에서 숟가락을 꺼내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는 빈 그릇과 숫가락을 챙긴 후 소리 없이 사라졌다. 내가 김두룽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기억은 그때가 유일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 기억 속의 김두룽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존재이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는 유년기인 그때나 지금이나 두려움이 혼재된 관념이다. 내가 운곡을 떠난 것은 중학교 삼학년 무렵이었으며 김두룽은 그때까지 생존해 있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생몰(生沒) 연대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 그의 이름 또한 미스터리다. 김두룽이라 불렀으니 ‘김’은 아마도 성일 것으로 추측해 보지만 ‘두룽’이란 이름은 도무지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도령’이 사투리로 구전하던 중에 음운 변화를 거쳐 불린 것은 아닐지 생각도 해 보지만, 도령이란 호칭은 반가의 자손에 대한 존경의 칭호로 입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관념이라 할 수 있으므로 앞뒤가 맞질 않고, 그렇다고 ‘두룽’이라는 것 그 자체가 이름이라고 하기엔 그것도 뭔가 속 시원히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혼자 애장골 음침한 움막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을까? 인생의 후반에 들어 고향에 살던 시절을 추억하며 소환된 김두룽은 내겐 아주 오래된, 그리고 언젠간 풀어야 할 숙제 같은 의문을 던진 인물이었지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길은 이제 없다. 몇 해 전 어머니께서도 세상을 떠나셨으니 전후 사정의 실마리가 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물어볼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온통 신비에 가득 찬 그의 정체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삶의 이야기는, 어쩌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밋거리를 넘어 극적이고 의미있는 기록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작에 적극적으로 수소문해 자료화하지 못한 나의 태만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고향을 찾았을 때 나는 마을을 가로질러 그가 거처하던 곳이 바라 보이던 길을 걸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은 희미한 실루엣만 남기고 울창한 삼림에 묻혔다. 돌무덤이 여기저기 보이던 애장골도, 김두룽의 움막도 삼림에 묻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지금쯤 저녁밥 짓는 연기가 온 마을에 자욱하고 김두룽의 움막에서도 푸른 연기가 피어오를 해거름이었지만 마을엔 고요한 침묵만 흐르고 애장골과 김두룽의 움막 터로 가늠되는 숲엔 그때처럼 산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