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이 되어서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산타클로스가 선물꾸러미를 내 머리맡에 두고 가는 상상이 실현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때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안감에 스펀지가 충전된 후드 점퍼나 중학생들이 쓰는 검은 모자, 빨래판 스파이크 운동화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산타의 선물은 받지 못했다. 단지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은 내 기도와 선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평생 노동을 하며 늙어버린 가난한 종조부처럼 이빨이 빠져 옴팡진 양 볼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한여름 뙤약볕에 살갗을 태워 가며 낫으로 보리를 벤다거나, 웅덩이 물이 다 비워질 때까지 온종일 두레질을 하며 논에 물을 대는 끔찍한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어른이 감당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일은 온통 힘든 것뿐이어서,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도 말끝마다 선생 똥은 개도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정작 내가 어른이 되기 싫은 진짜 이유는 노동과 책임 때문이 아니었다. 산타클로스와 인어공주와 바닷속 맷돌 같은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 어른들의 정서가 싫어서였다. 그래서 난 피터 팬처럼 팅크벨을 따라 네버랜드로 달아나고 싶었다. 그곳은 영원히 성장하지 않는 아이들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어린이로 살고 싶은 시골 소년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지금 헤어지면 영영 못 만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실엔 여자아이들이 엉엉 우는 소리로 가득 찼다. 차마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남자아이들도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까지 감추진 못했다.
하지만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던 그 소년은 곧 고향을 떠나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엔 터무니없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그 옛날의 선생님들보다 훨씬 힘든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한평생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어언 백발이 된 그는 세상살이가 우울하기만 하다. 그가 바로, 네버랜드로 떠나지 못하고 몸만 늙어버린 피터 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