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 아재

by 모노크롬


아재는 그때까진 아재가 아니라 덕구였다. 난 이월에 태어나 비교적 달 수를 채운 데다 얼핏 외양은 조숙해 보여서 일곱 살이 입학 적령인 초등학교를 여섯 살에 들어갔는데, 그래서 적령에 입학한 오촌 당숙인 덕구와는 같은 일 학년이 되었다. 덕구를 비롯한 골목 친구들도 모두 나보다 한두 살 많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았고, 유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덕구는 나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매사에 적극적이었으며 야무진 아이였다. 내가 문약(文弱)하고 어리석은 천성을 타고난 반면, 덕구는 행동이 기민하고 눈치가 빠를 뿐 아니라 ‘싸움’도 잘하여 친구들 사이에서도 대장으로 통했다. 몸집만 클 뿐 여러모로 실속이 없는 나는 그런 당숙에게 늘 의지하는 편이었고 그 또한 가문의 조카인 내게 일종의 보호본능 같은 잠재의식을 갖고 있었다.


덕구는 나랑 망태를 지고 종종 꼴(소에게 먹일 풀)을 베러 다녔는데, 내가 망태에 삼분의 일 정도 꼴을 채우는 동안 덕구는 벌써 망태가 터질 듯 꾹꾹 눌러 채운 후 그때부턴 으레 내 망태까지 채워주고 같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또 언젠가는 그를 따라 먼 산으로 땔감을 채취하러 간 일이 있었다. 농사일에 손방인 나는 나뭇짐을 꾸리는 일도 역시 서툴러 요령 없이 힘만 들일 뿐 도무지 진척이 없자 보다 못한 그는 내 짐을 먼저 꾸리기 시작했다. 마른 나뭇가지와 갈퀴로 긁어모은 솔가리(떨어진 소나무잎)를 김밥처럼 둥글게 말아 새끼줄로 단단히 묶은 후 지게에 올려 나뭇짐을 완성했다. 아직 어리지만, 그의 일머리는 노련한 농부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내 짐을 먼저 만들어 지겟작대기에 괴어 세워두고 묵묵히 자신의 짐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저런 일솜씨야말로 천생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덕구는 나보다 겨우 한 살 위였지만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


어쩌다 골목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놀 때, 내게 사소한 다툼이라도 생기게 되면 덕구는 내가 생각해도 공정하지 않다 싶을 정도로 내 편을 들곤 했다. 골목 친구들은 이런 우리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고, 또 웬만하면 골목대장인 덕구의 주장을 대놓고 거부하지 못하였으므로 내심 불만이 있어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재의 든든한 보호를 받는 조카는 덕구를 한 번도 아재라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덕구가 나를 위한 호위무사로 자처하는 일은 혈족의 의리상 당연하다고 여겼으며, 종가인 우리 집과의 ‘권력관계’를 놓고 보면 덕구가 나의 신변을 보호하거나 내가 추구하는 이익을 지켜주는 일들은 그의 의무가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문중에서는 우리 집을 ‘큰 집’이라 불렀고, 덕구네 집을 ‘작은 집’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구와 나는 이념을 초월한 각별한 골목 친구였다. 아주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난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덕구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종조모께서는 버릇없는 조카가 당숙의 이름을 ‘덕구야, 덕구야’ 하고 부르는 모습이 매양 편치 않았겠지만, 그때까지는 드러나게 관여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 후에 짐작한 일이지만 종조모께선 위로 넷이나 되는 자녀를 두고도 마흔이 넘어 덕구를 만산(晩産)한 일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것을 염려하였던 것 같았다. 게다가 덕구 아래로도 둘이나 두게 되었으니 타성 집안의 아낙들뿐 아니라 문중의 질부들 사이에서도 수군거림이 생겨났다. 그렇다고 촌수와 나이의 부조화가 자칫 기강의 해이로 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도 없었으니, 종조모의 근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내 나이 열 살쯤으로 기억되는 그해 설날, 문중이 가호를 돌며 차례를 지내는 풍습에 따라 당숙의 댁에서 차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대청의 제상(祭床)과 섬돌을 오르내리며 차례 준비에 분주한 때, 뜰 안 모퉁이에서 덕구와 딱지치기에 여념이 없던 나를 보고 종조모께서 드디어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며 크게 꾸짖었다.

“네 이놈! 어디 감히 아재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종조모의 추상같은 격노는 일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단행된 대외적 ‘선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이긴 하나 엄연한 당숙의 위상을 정리하고자 기회를 노리던 종조모는 고심 끝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절묘한 타이밍에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그리고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와 달리 집안의 어른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재미있다는 듯이 껄껄 웃는 웃음은 종조모의 단행에 대한 묵시의 동의로 받아들여졌다. 그해 설날 이후로 덕구는 아재가 되었다.


그리고 몇 해 전. 경향으로 흩어진 문중의 일족들이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기 위해 선산에 모였다. 어언 반세기의 세월을 보낸 우리의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앉았고, 얼굴엔 각자의 인생 역정을 그린 주름이 깊게 팼다. 숙질간의 서열과 기강을 세우려 노심초사하던 어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이제 우리가 집안의 어른이 되어 나누는 대화는 응당 존칭과 존대의 단어로 조립된 것이었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유년기의 추억과,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친근감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끈끈한 유대로 지속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어른이 된 지금도 나의 낫질은 옛날의 그것에 비해 한치도 진전이 없이 여전히 어설프고 위태롭기만 한데 몇 걸음 뒤에서 유심히 보고 있던 당숙이 다가와서 내 손에 들려 있던 낫을 슬그머니 빼앗아 들고 봉분을 타기 시작했다. 세월의 연륜이 더해졌는지 당숙의 낫질은 한층 익었다. 나는, 땅에 납작 엎드린 가시넝쿨과 어린 망개나무며 온갖 잡초들이 당숙의 가벼운 낫질에 말끔히 잘려 나가는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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