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회사원의 이야기 - 5. 관계에 대한 작은 고찰
어른들은 항상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나이가 든다는 건 말이야.. 축의금 낼 일보다 조의금 낼 일이 많아지는 게 어른이야."
새벽에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또 대북 풍선이 넘어왔을까? 아니면 예상되는 것은 슬픈 일에 대한 연락이다. (계엄령으로 인한 긴급 재난 문자는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2024년)
어느새 내가 그 나이가 된 걸까..
아주 늦은 저녘.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친구의 연락,
새벽녘 회사 사람들의 연락.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날도 그렇게 온 연락 한통.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이런 소식 전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전해야 될지 말지 고민하다 보낸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친구의 문자
코로나 19로 몇 년을 보지 못하고
그러고 나서는 내 살기에 바빠, 내 일정에 바빠 매번 보는 걸 미뤄왔었는데
새벽 일어나 접한 슬픈 소식에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라는 직접적인 현실과
이렇게 연락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하고 힘들었을까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좀 더 먼저 연락할걸 내 세상 사는 게 머가 그리 바빴을까
자던 잠은 싹 날아가버렸다. 어떻게 답을 해야 될지.
막상 2시간 뒤 출근을 앞두고 갈 수 있는 상황도 안되고 막막해졌다.
그 많은 시간, 그 많은 날들 나는 그들을 잊고 살았는지..
그렇게 매일 보던 없으면 안 되는 친구들이었는데
그저 보고 웃고 공감하고 같이 고민하고 힘이 되어 주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왜 우린 잊혀져야 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친구 중에 사회 관계성이 아주 좋은 녀석이 하나 있다.
몇 년을 같이 대학 생활하면서 내 힘듦을 도와주고 같이 기뻐해주고 고민해 주던 놈이었는데
어느새 사회로 직장으로 나가고 나니 서로의 삶에 바빠 연락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맨 처음 느낌 감정은
헤오(Heo) : 야 섭섭하다. 아무리 안 보기로 하지만 연락도 없고 너무 한 거 아닌가?
관계성 좋은 녀석 : 그게 왜? 곁에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니가?
헤오(Heo) : 아니 그래도 안부도 묻고 연락도 하고 안 본다고 멀어지는 게 섭섭하잖아
관계성 좋은 녀석 :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시 보면 이렇게 반가울 건데 헤어진 게 아니잖니
매정하다 느꼈을까 내가 의지했던 감정이 컸던 걸까..
어릴 때는 명절, 새해, 생일 그래도 때 되면 안부를 묻고 전화를 하고 얼굴을 봐야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친구의 말처럼
현재의 최선을 다해 그때의 관계에 진심이면 되는 걸까
그때는 "잘 살고 있으면 된 거지" 란 말이 비수처럼 마음에 콱 박혔었는데
승승장구하는 그 친구를 보면 관계에 집착하는, 과거에 집착하는 나보다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친구와 회사 사람은 다르다고 이야기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란 걸.
결국 현재의 나의 행복과 고민은 나를 지탱하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나온단 걸 문득 알아차린다. 잊혀져간 사람이 아닌 지금
오늘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해 본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오래 못 본 사람도 있고 방금 본 사람도 있고
친함을 기대했다가 섭섭할 때도 있고 별거 아닌 한 마디에 두근거리는 사람도 있다.
아웃 오브 페이스.
안 보면 옅어지고 희미해지고 잊혀진다.
왜 나는 그때의 사람들에게 소홀해하며 잊고 살았나로 시작한 생각이
결국엔 그저 모두에게 잘할 수 없다고 또 그러니까 살 수 있는 거라고
무심한 게 아니라 그때를 잠시 제쳐두고 지금을 살아 내는 나라고 스스로를 위한 변명으로 마무리한다.
"보고 싶었어"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운 내게 누군가 사무실에서 해줬던 한마디다.
아~~~~~ 주 입에 바른 이야기이며 아무런 감정 없는 이야기인 것을 알지만
지금의 관계에서 나는 또 작은 이 한마디에 설레어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 본다.
오늘을 같이 사는 이 사람들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다.
"저는요 보고 싶진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