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허튼 수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튼 May 17. 2019

영어 슬럼프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면

영어강사는 이렇게 빠져나왔습니다




  영어 공부를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해 본 사람이라면 슬럼프는 그리 먼 단어가 아니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는데 능률이 오르지 않으니, 본인의 실력이 정체된 것 같아 의욕마저 꺾이는 상태가 바로 슬럼프다. 


  우선 본인이 정말로 슬럼프에 빠졌는지를 판단해보자. 슬럼프는 열심히 달리다가 너무 힘들어 숨을 고르며 걷는 것일 수도 있고, 반듯한 운동장을 달리다가 비포장도로를 만나 자연스레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으며, 줄다리기를 하다가 상대가 갑자기 줄을 놓아버려 전의를 상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원인이 뭐가 됐든, 슬럼프에 빠지려면 적어도 절실하게 무언가를 열심히 했어야 한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슬럼프에 빠질 수가 없다. 단순히 하기 싫어 미루는 마음을 슬럼프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슬럼프라고 보기 힘든 또 다른 경우는 본인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어도 발전이 없다고 스스로 느낄 때이다. 영어라면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시험, 취직, 승진처럼 당락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영어 실력을 가늠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당장 가시적인 학습효과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당신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슬럼프에 걸려들었다고 판단된다면, 정말로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지 물어보자. 웬만한 음식도 맛있게 살려내는 마법의 가루처럼, 슬럼프는 나의 부진을 변명할 마법의 방패막이다. 슬럼프에 빠진 모든 이가 이른 탈출을 원하진 않는다. 영화 마다가스카를 보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동물들은 의외로 동물원이 주는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 슬럼프와 동물원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게 아니다. 대다수의 시선이 모두의 시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슬럼프에 걸터앉아 벗어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벗어나는 것을 추천한다. 영어 학습 슬럼프가 지속된다면실력은 정체하는 게 아니라 후퇴한다. 영어강사인 나도 일주일만 영어를 하지 않아도 감각이 바로 떨어진다. 야속하게도 언어는 노출의 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후진이 두렵다면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 


 슬럼프로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영어는 잠시 잊고 쉬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못하겠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잠시’라는 게 참 다르다. 영어 공부를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불안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쉬지 말라는 게 아니라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만큼 자신이 불안에 떨지 않게 학습하는 게 낫다


  영어 슬럼프에 발을 디딜 무렵, 나는 주로 집에서 영어전공서적을 뒤적거리다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머리를 식히는 식이었다. 영어 잘하는 사람은 이미 너무 많은데 해외 유학도 안 간 내가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하는 앞선 패배감. 지금 내 모습에 대한 실망보다 희망적인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절망감. 그럴 바엔 지금 그냥 어느 선에서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비합리적 의심. 그래도 해온 게 아깝고, 다른 뭔가를 월등히 잘하는 건 아닌 합리적 현실. 멈춰 있으면서 억지로 엔진을 켜 둔 채 의미 없이 공회전하는 기분이었다. 헛도는 차에서 내린 결론은 ‘결국 해야 한다면, 언젠가 해내야 한다면 지금 안 할 수는 없겠다’였다.  앞으로 나아가진 못하더라도 뒷걸음질 치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나에게 다양한 시도를 실패해도 괜찮은 여유를 주었다. 


  영어 슬럼프를 벗고 싶다면 자신의 학습을 다각화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영어를 듣고, 읽고, 이해했던 학습 패턴에서 정작 나 자신이 누락됐음을 알게 되었다. 영어 공부의 중심에 내 이야기는 빠져있던 것이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누구나 누구에게 할 수 있는 얘기만 나눴다는 사실이 공허했다. 그때 내 영어는 알맹이 없이 부풀기만 한질소 과자와 다를 게 없었다. 알맹이를 키워야 했다. 나를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나의 어떤 면을 적당히 드러내고 강조할지 고민했다. 쭉 써온 일기를 참고하기도 했고,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질문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답하는 연습을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고무인 줄 알았던 유에서 유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What if(~라면 어떻게 될까)” 두 단어로 내가 겪는 문화를 대하려 연습했다. 책을 읽다가도 “내가 주인공과 다른 선택을 했다면?”, 기사를 보다가도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유튜브 먹방을 보다가도 “내가 외국인에게 먹방을 소개한다면?” 시시콜콜한 질문부터 심오한 질문까지 어떻게든 대답하려 노력했다. 즉흥적으로 영어로 말해보거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영어로 적어 보면서 나 자신을 채우려고 애썼다. 영어회화 모임에 직접 나가 일상 대화로 시작해 예기치 못한 질문에 엉거주춤 답도 해보고, 직접 나가기 힘들 땐 외국인과 언어 교환할 수 있는 어플을 이용해 다양한 주제로 얘기했다. 어떻게 말하면 얘기가 통할까 걱정했던 내가, 어떤 내용으로 얘기를 이어나갈까 고민하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진 못했을지라도 이전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 통했던 최고의 방법이 오늘은 아닐 수 있다. 최적의 방법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당신이 슬럼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말은 다른 최적의 방법을 찾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당신을 건지려 누군가 동아줄을 던진다 해도 줄을 잡고 올라갈 힘이 없다면, 동아줄은 희망이 아닌 희망고문이 된다. 부디 희망을 안고 올라오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솔직히 영어 왜 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