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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튼 Apr 29. 2019

솔직히 영어 왜 해요

영어강사도 묻습니다




 솔직히 영어 왜 해요?


 영어강사인 나에겐 꽤나 심오하고 복잡하게 들린다. 하나처럼 보이는 질문은 두 가지 의문을 포함하고 있다. ‘선생님은 왜 영어를 하는지’와 ‘우리(학생들)는 왜 영어를 해야 하는지’다. ‘솔직히’라는 조건까지 소화하려면, 나는 최선을 다해 뻔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1. 나는 왜 영어를 하는가?



1) 먹고살려고. 

생계는 무엇보다 숭고한 동기다. 살아 나갈 방도 중 하나로 영어 강사를 선택했다. 선택했으니 노력했고, 노력했으니 지금까지도 학생들을 만난다. 살림을 감당하려 벌인 일이 이제는 사람에 감동하며 내 세계를 벌리고 있다. 이 감동은 기대보다 드물지만 기댈 만큼 강력하다. ‘왜 이렇게 사나’라는 질문으로 고단한 며칠을 보내면,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싶은 하루가 온다. 그렇게 늘 생존과 생활 사이를 오간다. 



2) 잘하니 좋아졌다. 

장마처럼 자만이 이따금 다녀가는 동기다. 남들의 재주보다 월등히 뛰어난 게 아니라 내가 가진 다른 능력보다 언어가 월등히 나았다. 학창 시절, 분명 덜 애썼는데 더 애쓴 과목보다 이해가 잘 되고 성과가 좋은 과목이 있다. 나는 그게 언어였고, 대신 체육 실력은 (걷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누군가 감각이니 재능이니 말해주는 언어 능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좋아졌다. 



3) 덕질이 수월하다. 

사서 고생하는 동기다. '덕질'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보고 파고드는 행위다. 영어 문화에 깊은 관심이 있어 자연스레 영어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다. 오히려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의 영화, 드라마, 노래, 글, 사람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해 영어는 필수였다. 비영어권 나라의 작품들은 웬만한 대중성이나 작품성을 인정받지 않는 이상 친절하게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영어로는 번역된 경우가 많아 원활한 덕질을 위해 부단한 영어와 씨름해야 했다. 영어권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싶어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영어 자막 있는 비영어권 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4) 한국어를 더 이해하려고.

내게 가장 중요한 동기다.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반드시 한국어를 언급한다. 한국어는 한국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다. 한국어 구사능력은 내가 부리는 막중한 욕심이자 세워 나가야 할 자존심이다. 언어 실력은 대개 언어 간에 전이된다고 믿는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두 언어의 공통점, 차이점, 두 언어가 서로 미치는 영향력을 폭넓게 인지해야 학생들에게 설득력 있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영어 사전보다 한글 사전을 훨씬 오래 펼쳐 놓으며, 어떤 한국 작품이 언제 어떻게 영어로 번역되는지를 찾아본다. 한국어가 그 자체로 해외에서 쓰일 때 누구보다 흐뭇하다. 






2. 학생들은 왜 영어를 해야 하는가?


재밌어서, 좋아서, 영어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나쁠 게 없어서, 옆에 애 보단 잘하고 싶어서, 쪽팔리기 싫어서, 이번에 100점 받으면 최신 스마트폰 사준다고 해서,  해외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서, 수능 대박 나서 취업 잘하고 싶어서, 승진하려고, 해외여행 가려고, 해외 유학 가려고, 영어 선생님 하고 싶어서, 외국인 애인을 만나고 싶어서, 그냥 …


  학습 동기는 셀 수도 없고, 귀천도 없다. 수시로 변하며, 여러 동기가 뭉쳐져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없을 수도 있다.


   영어 강사인 내가 학생들에게 확실한 동기를 제시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제각각 꽂히는 동기가 다르다. 목표 역시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만 걸리라는 심정으로 온갖 이유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영어를 하면 유리하고, 영어를 안 하면 불리하다는 식의 논리는 더더욱 싫다. 이쯤 되면, 영어 강사라는 사람이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변명한다면 강사 역시 영어를 바라보는 시각, 영어 학습을 고민하는 시야,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야 및 방향이 다르다. 나는 어떻게 하면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만들지?라는 고민보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영어 공부를 목표에 맞게 가르칠 수 있을지를 고민해왔고, 앞으로도 고민하고 싶다.

   영어를 배워야 하는 치명적인 이유를 묻는 학생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한다. 잘하고 싶으니 열심히 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려니 뚜렷한 동기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그토록 절실한 동기를 기막히게 내가 찾아주면, 그만큼 절실한 노력으로 이어지는 걸까? 동기의 중요성을 묵살하는 게 아니다. 가슴에 와 닿는 확실한 동기는 분명 목표로 가는데 무엇보다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기의 존재가 노력의 존재를 무조건 수반하지는 않는다. 이유를 좇는 열정으로 자신을 되돌아 보길 바란다.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싶고, 몰라서 못 한다는 핑계를 대고 싶은지도 모른다. 솔직히 영어를 왜 하냐는 질문에, 솔직히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고 싶은 건지 질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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